부모 이기는 자식 없다.

큰 일을 앞 둔 날은 없던 징크스도 생긴다. 아침을 거르고 9시에 예약된 H1B비자 인터뷰를 위해 서둘러 나갔다. 버스를 타야지 싶은데 버스카드 잔액이 1,150원 남은 것이 떠올랐다. 불안불안 주섬주섬 왕복 2,600원 어치 동전을 챙겨나가는데 잠이 덜 깬 어머니와 마주쳤다. 쩔그렁거리는 내 호주머니를 혀를 끌끌차며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버스카드를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라. 넉넉히 들었어.”

왕복4차선 도로 건너편 버스정류장에 가야하는데 꼭 이럴 때 내가 타야하는 버스가 다가온다. 마침 정지신호라 좌우좌우 확인하며 무단횡단을 하는데 골목에서 택시 한 대가 빼액하며 튀어 나온다. 놀란 가슴 진정하여 버스에 타니 운 좋게도 자리가 많다. 서류 뭉치를 꼬옥 안고 맨 뒷자리 구석에 앉는다. 핸드폰도 집에 두고와 멍함을 즐기는 것도 잠시. 밀리는 출근길, 버스는 자꾸 직진 차선을 두고 맨 오른쪽 우회전 차선으로 가다가 마지막 순간에 직진차선으로 끼어든다. 내 목적지와 다른 곳으로 가는 건 아닌가 엄한 불안감에 버스번호도 확인하고 노선표도 다시본다. 내가 조심스러운(小心 셔우쉰) 사람인 건 알았는데 이렇게 소심할 줄이야.

모든 일은 15분도 채 안되는 시간에 순탄하게 끝났다. 안 되는 일은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데, 될 일은 너무 손쉽게 이루어진다. 허무하게도. 

영사가 아이티에 자원봉사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웠다. 승인 스탬프와 함께 건낸 한 마디.”Keep on doing the right thing for the world.” 내가 얼마나 세속적인 사람인지는 내가 더 잘 안다. 옳은 일을 하려고 살아 온게 아니다. 살다 보니 운 좋게 옳은 일을 하고 있을 뿐. 
집에 들어와보니 식탁에는 김이 모락모락 불고기 한 냄비, 소파에는 어머니가 앉아있다. 통과했어요 비자 받아요 했더니 조용히 안아주는 어머니. 어느새 안방에서 나온 아버지가 함께 안아준다. 긴장 많이했지. 수고했어 아들.

지난 일요일 처형 결혼식 뒤에 아내 친구들과 짧게 만났다. 내가 부모님의 몰이해를 탓하며 흥분하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를 “부모 이기는 자식 없다”로 잘못 말했다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것도 힘주어 두 번이나. 

하지만, 실수가 아니었나보다. 

결국 부모 이기는 자식은 없다. 자식이 스스로 이겼다고 착각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식의 스크린 앞에 대배우 부모는 항상 장렬하게 패배한다. 길 떠나겠다는 아들 모질게 보내고 뒤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는 부모의 사랑.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자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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