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

교회가 불에 탔다. Veteran’s Day를 끼고 연휴였던 지난 토요일 새벽, 교회 사목실 외벽에서 시작된 불은 유리를 깨고 천장일부에 피해를 입혔다. 다행히 이웃의 신고로 불은 금새 진압되었다지만 지하로 번진 불은 보일러를 완전히 태웠다. 화마는 겉보기에는 멀쩡한 교회 곳곳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입혔다. 창문과 문을 모두 열어두었지만 교회 내부에는 탄내가 진동했다. 학생들은 오들오들 떨면서 흩어져 앉아있다가 나를 반겼다. 모국도, 여기 미국도 모두 하수상한데. 평안한 날이 없구나. 학생들이 주섬주섬 나를 빙 둘러싼다. 쨍한 하늘, 바람은 유난히 매섭다.

내가 파견되어 일하는 하이드 파크는 보스턴 근교 가난한 도시다. 이름이 말해주듯 19세기 초 영국 이민자들이 런던처럼 꾸미고자 하는 마음에 Hyde Park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도시의 출발은 풍요로웠다. 너도 나도 교회도 짓고 상점도 지어 마을을 키웠다. 하지만 보스턴 시내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돈 있는 사람들은 낡은 교외 집을 떠나기 시작했다. 낡은 집은 월세가 저렴하다. 보스턴 시내에서 차로 20여분 남짓. 이 도시의 집세는 보스턴의 절반가량이다. 150여년의 시간동안 도시는 흥망성쇠를 겪으며 도시 인구의 85%가 유색인종인 이민자들의 도시가 되었다.

부유한 공동체는 풍족하게 서로 선을 긋고, 가난한 공동체는 공간도 물자도 인력도 서로 나누고 공유한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남는다. 계속 살아간다.

오피스가 있는 도서관 만으로는 강의실이 부족해서 월, 목 오후는 길 건너 교회 부속실을 강의실로 사용한다. 처음에는 Christ Church로 지어졌으나 지금은 Iglesia de San Juan으로 불린다. 무려 1860년에 지어진 교회는 곳곳에 세월의 흔적을 피할 수 없지만 제법 관리가 잘 되어있다. 교회관리인 Fabio는 작고 단단한 체구에 늘 멋들어진 콧수염을 기르고 있다. 한번은 나에게 한국인 친구가 있었노라며 낡은 지갑 하고도 매우 안쪽 메모지 뭉치에서 한자로 쓰여진 이름과 세월에 뭉개진 번호를 보여주었다. 아무리 읽어봐도 중국사람 같은데.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어색하게 웃어 넘겼다. 눙치는 재주가 뛰어난 그는 늘 이런저런 교회 행사에 나를 초대하지만 한 번도 가지못했다. 사실 주말에는 한 번도 Hyde Park에 가본 적이 없다. 

불이 난 주말은 공교롭게도 도널드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였다. 음모론은 언제나 흥미롭지만, 내 주변 일에 음모론을 적용하는 일은 끔찍하다. 첫눈이 오려니 추위가 먼저왔다. “공식적인” 화재의 원인은 이랬다. 술취한 노인이 몸을 녹이려 교회 뒤편 이동식 화장실 안에서 불을 피운 것이 그만 불길이 커져 교회로 옮겨붙은 사고로 경찰들은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그렇다면 쇠지레로 들어올려진 뒷문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돌덩이는? 의심을 멈추기로 했다. 학생들의 동요를 막기위해 증오범죄 만큼은 연관짓지 않으려 한다. 행여 관련없다 하더라도 이제 이런 일이 생기면 반사적으로 증오범죄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되었다니. 트럼프가 그려가는 세상에서 내 이성은 자꾸 부정적인 테두리로 내몰린다. 

첫 눈이 왔던 날을 한 해가 지나 날짜 그대로 기억하기는 어렵다. 작년에는 조금 이른 10월 말쯤, 재 작년에는 올해와 비슷하게 혹은 좀 더 늦은 11월 말 쯤 이었던 듯 싶다. 그 전 첫 눈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년에는 올해의 첫 눈을 기억할까.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안아 보냈다. Thanksgiving 연휴에도 학생들 대부분은 일터로 향한다. 휴가를 떠난 누군가를 대신해 이들이 일한다. 오버타임이니까 1.5배 받아요! 신난다!라니. 행여 도시 어딘가에서 이들을 마주친다면 나는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라디오에는 트럼프 당선자의 행보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흘러 나온다. 한국의 포탈은 성난 민심으로 들끓는다. 나는 주말에 Hyde Park도 광화문에도 가지 못했다. 

무슨일이 일어난 후에야 사람들은 그 시간 그 날짜 그 순간의 공기를 기억한다. 나머지 별 일없는 시간들은 그저 흘러갈 뿐이다. 흘러간 시간들은 무의미 한걸까. 한국의 우리는 올해의 촛불들을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할까. 침묵했던 시간들은 잊혀지겠지. 광화문 촘촘하게 모여든 사람들의 온기를 기억하자.

불에 탄 교회는 다음주에 다시 문을 연다. 기억난다. 학생들이 주섬주섬 나를 빙 둘러싼다. 온기. 새 보일러보다 따뜻한 사람의 온기. 어쩌면 겨울은 온기를 느끼기위해 존재하는 계절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딘가 모를 온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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