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유머감각이 남다른 사람이다. 어머니께서 동창모임에 가신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온 내가 오늘 저녁 뭐 먹을까요 하고 여쭙자 아버지는 예의 그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자동차 핸들을 열심히 움직이는 시늉을 하셨다. 그래서 저녁이 뭔데요. 부엌에 카레 있어.
부엌에 car racer.
부엌에 카레있어.
부엌에 car racer.
아버지는 유머 만큼이나 요리도 잘 하는 사람이다. 우리 집의 메인쉐프는 늘 어머니이지만, 아버지의 내공을 우리 형제는 안다. 김장할 때면 무도, 배추도 아버지가 오와 열을 맞춰 재단한다. 어머니는 양념 배합으로 김장을 지휘한다. 간은 두 분이 합의를 본다. 아무튼 아버지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다. 힘주어 두 번 말 할 필요가 있다. 어머니가 집을 비우면 아버지는 간장과 참기름과 고추장과 설탕에 잘 불린 떡국떡 만으로 만든 떡볶이나 냉동실 구석 다진돼지고기를 찾아내 큼직한 양파 조각과 달달 볶은 유니짜장밥으로 엄마의 빈자리를 채웠다. 배를 통통 두드리며 든든하게 잘 먹은 표정을 보이는 우리들을 마주하는, 늦저녁에 귀가하신 어머니의 표정에는 엷은 서운함이 배어나곤 했다. 카레 있어. 그러고보니 자주 아버지의 개그 소재로 이용당한 카레도 늘 당근과 감자가 달큰하게 익어 맛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걸음걸이 마저 닮아 어두운 건물 지하주차장에서는 나를 아버지로 오인한 어른들의 직각인사도 받아보았다. 머리를 잔뜩 길렀던 스무살 무렵을 제외하고는 어디를 가나 아버지랑 똑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마저도 아버지의 70년대 사진을 보니 장발의 부자는 과연 닮아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버지를 보고 자란 나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나이들어갈지를 이미 너무 잘 안다는 거다. 30대의 나는 이미 60대 후반의 나까지 미리 보며 자랐다.
나는 겉모습 뿐만 아니라 내면도 아버지를 많이 닮아있음을 깨달았다. 새로운 음식에 덤벼드는 무모한 모험심, 좋은게 좋은 물렁한 성격, 서글서글하면서 은근히 낯을 가리는 소심함, 그리고 지나친 유머감각…까지. 나는 아버지의 황소고집, 지나친 이과적 계량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살면서 동종의 비난이 종종 나에게도 쏟아지는 것을 경험하고서는 아버지의 장단점을 고루 닮은 것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내 나이 이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어떤 과거와 어떤 현재와 어떤 미래를 보았을까. 아버지가 만들어준 떡볶이 여기 저기 묻혀가며 왁자지껄하던 유년시절이 떠오른다. 바닥에 흘린 고추가루 묻은 파 조각 하나가 어머니 눈에 들어 아버지는 우리를 배불리 먹이고도 핀잔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핀잔을 들으면 멋적은 미소를 짓는 것도, 흘리며 먹는 것도 나는 아버지를 닮았다.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면 -화장을 잘 안하고 다니시는 어머니- 검버섯 좌표들과 속 썩이는 아들 덕에 늘기만 하던 눈가주름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아버지는 거울 속에 있다. 밤기차 같은 기억을 타고 서른 무렵의 아버지를 만난다. 거울 속 아버지가 미소 짓는다.
아버지의 떡볶이.
아빠가 보고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