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삶을 읽는다.

나는 삶을 읽는다. 공터 잡초들로, 막 알에서 깨어난 연회색 아기 거위들로, 유모차를 채우는 아기 웃음소리로, 농구코트 온통 땀방울로 가득한 계절. 말랑말랑한 것들이 세상을 메우는 동안에도 삶은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에 걸려있는 화살처럼 발사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죽음에 관한 글을 쓴다.   

회색 수염을 잔뜩 기른, 키가 190cm은 넘어 보이는 연사가 단에 올랐다. 불과 4주 전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동료의 공로상을 대리 수상하는 자리에서 불쑥 연사가 자신의 아들을 사고로 잃었을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많은 위로전화와 편지들을 받았고, 그의 경황을 묻고 걱정하는 사람들을 응대하면서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차츰 사람들의 연락이 줄어들 무렵 느지막이 동료가 찾아왔다. 오래 알고 지냈지만 집으로 그가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잘 여문 위스키가 한 순배 돌자 동료가 말했다. 자네 아들이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들으러 온 것이 아닐세. 자네 아들이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들으러 왔네. 연사의 아들은 철새 서식지 돌보는걸 좋아했다. 아들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그 때에도 샌프란시스코 연안 볼리나스 포인트를 따라 난 철새도래지에 머물렀다. 동료는 눈이 휘둥그래진 채로 의자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내 취미가 사실 철새 관찰이라네. 더 말해보게나. 그런데 연사는 그 순간 자기가 철새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잔에 위스키를 다시 채워 들고 계단을 올라, 사고 후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했던 아들의 방으로 갔다. 마치 잠시 여행을 떠난 것처럼, 방은 주인의 부재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생생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책상에는 읽다가 만 책이 펼쳐져 있고, 침대 맡에는 아무렇게나 벗어둔 후드티가, 문가에는 아들의 손 때가 묻은 기타가 널브러져있었다. 주인을 잃은 현재진행형의 방에 둘은 우두커니 서있었다. 동료가 책상의 책을 먼저 집어 들어 연사에게 건넸다. 대충 끼워 넣은 펜이 바닥에 떨어졌다. 낯은 익지만 굳이 이름까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던 새들의 사진이 펼쳐지고, 밑줄 치던 펜이 멈춘 자리, 불과 얼마 전 까지 아들의 손이 닿았던 자리에 그는 가만히 손을 얹어보았다. 밤이 깊어 동료는 떠나고, 연사는 아들 침대에 앉아 천천히 아들이 읽다 멈춘 자리부터 책을 읽어나갔다. 철새에 대한 책이 매우 흥미롭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몇 달 동안이나 연사는 동료와 자기는 잘 알지도 못하는 철새 서식지 얘기를 나누었다. 동료는 기꺼이 그의 말 동무가 되어주었다. 아들이 살아있었다면, 그리고 자신이 철새에 관심이 조금 더 일찍 생겼었다면 이 이야기를 아들과 나누었겠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들의 죽음보다는 아들의 삶에 대한 생각이 자라났다. 이제 철새 서식지에 대해 잘 아는 둘은 죽고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자신만 남았지만, 동료를 위한 자리에서, 동료가 자신의 아들을 위해 그랬듯이, 그의 죽음 대신 그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그를 기억하자는 말을 남기고 연사는 단에서 내려왔다.  

캄보디아의 해변에서 세상을 떠난 고등학교 시절 시 선생님을 추도하는 친구의 글을 본다. 친구가 글을 아주 잘 쓰는 덕에 시 선생님의 죽음을 전혀 모르는 나에게도 그의 삶만큼은 알 것만 같다. 그를 기억한다. 노동자의 날, 공사장 붕괴로 세상을 떠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사를 읽는다. 기사에는 삶이 없다. 죽음은 숫자로 남는다. 그들을 기억한다. 

죽은 이들의 삶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글 밖에 없다. 소외된 이들에게 동아줄을 내려주는 길도 글 만한 것이 없다. 나는 삶의 이야기들을 읽고, 죽음에 대한 글을 쓰고 밤도 낮도 너도 나도 구분 없이 흐른다. 강가에 흐드러진 풀잎들을 따서 강에 뿌려다오. 스틱스든 아케론이든 레테든 만나 같이 흐르다가 함께 바다에 닿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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