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

로펌 5년차에 보스턴으로 연수를 갔다. 딸 시은이가 태어나기도 전. 남편은 김천지검에 신임검사로 있을 때라 한국에 남았다. 미국에 도착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모든 것이 새롭던 시절. 함께 연수를 받던 동기들과 100년도 넘은 사설 장례식장을 견학 할 기회가 있었다. 장례식장임을 알리는 금박을 입힌 “Funeral Home” 간판을 제외하고는 주변 가정집들과 차이가 없었다. 박공지붕이 다섯 개가 되는 큰 규모의 구조물은 장례식장으로 쓰이는 본채와 장의사 가족의 거주공간인 별채로 나뉘어 있었다. 지하로는 별채와 본채가 이어져 있었는데 넓은 지하 공간에 준비실과 시체 안치실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들어선 본채는 삼대째 내려온다는 장례식장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게 청결했다. 시체운반용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휠체어를 탄 잭슨과 한 무리의 친구들은 몸을 괜히 과장스럽게 부르르 떨며 엘리베이터의 문을 닫았다. 나와 나머지 동기들은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빅토리아풍의 부드러운 조명과 벨벳으로 장식된 의자들로 포근함 마저 느껴지는 그 곳에서 내 생애 처음, 낯선 시체를 보았다. 홈리스로 추정되는 무연고 시체라고 했다. 네모난 철제 문이 열리고 하얀 천으로 쌓인 사람의 형체를 담은 선반이 스르륵 미끄러져 나왔다. 나는 그 형체의 발목을 먼저 만날 수 있었다. 발목에는 작은 방울 달려있는 고무줄이 끼워져 있었다. 동기 중 한 명이 장의사에게 물었다.

“이 방울은 뭐죠?”

장의사는 다시 선반을 밀어 넣으며 대답했다.

“미신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저희 업계에서는 일종의 안전장치입니다.”

“안전장치요?”

“아주 드물게 사망하신 줄 알았던 분들이 깨어나는 경우가 있거든요. 물론 요새처럼 병원에서 사망선고를 받는 경우에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만.”

다른 동기 한 명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방울 소리 덕분에 살아난 시체가 있었나요?”

살아난 시체가 아니라, 생명을 건진 사람이겠지. 나는 속으로 생각했지만, 모두들 맥락을 이해한 모양이므로 잠자코 있었다. 아니면 내가 영어가 짧은 까닭일까. 장의사가 대답했다.

“네. 있었습니다. 딱 한 번이지만.”

모두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1930년대에 할아버지가 지금 제 자리를 지키던 시절에 말입니다. 늦은 밤 난산을 하다가 숨을 거둔 젊은 여성이 있었습니다. 조산사가 사망신고를 하고 여성의 시체는 이곳으로 옮겨졌지요. 다행히도 아이는 무사했습니다.”

어느새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던 뒷 줄 동기들도 고개를 들어 장의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체가 들어온 시각이 새벽 세시 쯤이었다고 했는데, 할아버지는 그날따라 잠을 못 이루고 거실에서 포크너의 신간소설을 읽고 있었다고 했지요.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였던가. 별채 1층에 있는 거실은 예나 지금이나 시체 안치실 바로 위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서 계신 이 곳 바로 위가 그 거실입니다. 아무튼, 새벽 네 시나 되었을까. 할아버지가 희미한 방울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방울소리는 지하에서 들려오는 것이었지요. 처음에는 귀를 의심하였으나 자세히 귀를 기울여보니 틀림없는 방울 소리여서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내려가 보았다고 했습니다. 방울소리는 얼마전에 들어온 젊은 여성의 시체 저장고에서 들려오고 있었지요. 시제 저장고에 가까워오니 작게 흐느끼는 여성의 목소리도 들렸답니다. 문을 열어보니 여성의 발목에 달린 방울이 흔들리고 있었지요.”

그때 갑자기 벽에 걸려있던 전화기에서 벨이 울렸다. 모두들 긴장했던 터라 전화벨 소리에 놀라 몸을 움추렸다. 장의사는 성큼성큼 전화기 쪽으로 걸어갔다. 장의사의 파트너가 차와 쿠키를 준비해두었으니 언제든 올라오라는 것이었다. 장의사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는 황급히 선반을 잡아 당겼습니다. 보시는대로 저장고 안에는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습니다. 천을 걷어보니 죽은 줄 알았던 여성이 옅은 숨을 내쉬며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라고 힘 없이 외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바로 911에 신고를 했지요. 바로 저 전화기로요.”

장의사는 아까 파트너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벽에 걸린 전화기를 가리켰다.

“곧 응급요원들이 들이닥치고 죽은 줄 알았던 그 여성을 병원으로 실어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신문에도 대서특필되어 지역신문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보도가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도 그 여성의 소식을 신문 지면을 통해 들을 수 있었지요. 의사들 말로는 사실 가사상태에 빠졌던 여성이 시체 저장소로 바로 이송되어 온 덕에 저체온 상태에서 뇌손상을 막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혈액공급이 원활해진 덕에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이죠. 의식을 차린 여성은 바로 아이부터 찾았고, 결국 아이와 엄마는 재회할 수 있었죠.”

모두가 박수를 쳤다. 하지만 장의사의 표정은 왠지 어두워보였다. 박수 속에서 누군가 장의사에게 물었다.

“실수로 사망선고를 내린 조산사는 처벌을 받았나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그가 몸을 돌려 계단을 향하자 박수가 잦아들며 모두들 그를 따랐다. 휠체어에 탄 잭슨과 그 무리는 엘레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모두들 시체 안치실의 한기로부터 벗어나 따뜻한 차와 달콤한 쿠키를 맛볼 생각에 들떠있는 듯 보였다. 계단에 막 한 쪽 다리를 올리면서 장의사는 고개를 돌려 우리에게 말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일주일 후에 죽음에서 돌아왔던 그 여성과 재회하게 됩니다.”

모두가 발길을 멈췄다.

“재회라니요?”

“그녀가 다시 이곳으로 사망한 상태로 돌아오게 된 것이지요.”

“그게 무슨…”

우리는 모두 아연실색하여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간신히 죽음에서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 의료기술로는 그녀를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은 없었던 것이었겠죠. 하지만 그날 할아버지는 돌아온 그녀의 발목에 다시 방울을 달면서, 그녀가 또 한번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기적은 두 번 일어나지 않았죠. 그래도 그녀는 한 번은 살아 돌아와 아이를 만날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겠죠. 자, 이제 그만 올라가죠.”

별채는 아늑했다. 장의사의 파트너는 콧노래를 부르며 오븐장갑을 낀 채로 우리를 맞이했다. 차는 따뜻했고, 과자는 부드러웠지만. 아무 맛도 느낄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신 트름이 올라왔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사실 그 때 이미 배 안에 시은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신호대기에 버스가 멈췄다. 창문을 여니 가로수로 심은 아카시아나무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심호읍을 하니 속이 조금 진정되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자꾸 방울소리가 들렸다. 올망졸망한 아카시아 나무의 하얀 꽃방울들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향기는. 기억에 없다.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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