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비극은 없다.

오늘 아침 한 학생은 낡은 지프가 고장이 났다고 했다. 그래도 차는 빨리 고쳐야 한다. 지체장애가 있는 두살바기 아가를 둔 미혼모이다. 유아원도 가고 병원도 가려면 차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제 또 다른 학생은 집에 불이 났다. 다행이 인명피해는 없다고 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전기난로를 켰다고 했다. 잠이 들었다가 타는 냄새에 깨어보니 커튼에 불이 붙어있었다고 했다.

매니저 로리는 2주 연속으로 같은 친구가 상주인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첫 번째는 친구의 어머니, 두 번째는 친구의 동생.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비극은 그냥 그렇게 무심히 일어난다.

나는 한 사람의 총기난사로 인해 59명이 죽고 5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나라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이미 국제 마라톤 대회의 말미에 폭탄 테러가 일어났던 도시다. 가능성의 문은 늘 활짝 열려있다. 만약에. 라고 생각하는 순간, 공포가 엄습한다. 야구장에서도 콘서트 장에서도 축제 현장도 어쩌면 평범한 출근길 아침도.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한다. 삶은 운에 맡긴다.

또 다른 걱정도 있다. 무차별 총격에 의한 피해자들. 가해자는 사망했고 피해자들의 보상을 책임질 주체는 요원하다. 의료비용부터 대부분 각자의 보험에 의지해야하고, 상처받은 정신, 학교, 직장, 삶에서 잃어버린 시간들, 그리고 잃어버릴 시간들은 보상받기 어렵다. 이미 올랜도 나이트클럽(2016), 샌 버나디노의 복지센터(2015), 샌디 훅 초등학교(2012)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피해자들 중 상당수는 일차적으로는 국가가 허락한 총기에 피해를 입고, 이차적으로는 방만한 의료보험제도로 파탄에 이르렀다.

미국은 거대하고 붐비는 자본주의의 실험장이다. 미국은 결코 위대한 나라가 아니다. 위대했던 적도 없었다. 그러므로 다시 위대해 질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교만한 나라다.

오이디푸스 서사에서 오이디푸스의 교만이 그의 삶을 비극으로 이끈다. 오이디푸스는 재능이 많다. 그는 신과 대적할 수 있는 힘을 지녔으나 충동적이다. 천부적 재능은 운명과 결탁하여 결국 악을 행하고 만다. 총기소유. 자기방어를 위해서 쓸 수 있다는 그 교만이 모든 미국인의 삶을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동어반복적인 죽음들. 동어반복적인 정당화. 다시 동어반복적인 죽음들.

예견된 비극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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