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찌와 시간


지난 주에 쓰려던 글인데 생각에 발목이 잡혀 늦어졌다. 원래 모찌에 대한 글인데 시간에 대한 글이 될 것같다. 요즘 내 글은 마침표 찍을 때까지 어디로 흐를지 모른다.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다 보니 시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시간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시간의 흐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시간의 흐름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흐름에 대한 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결국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결론이 예상된다.

모찌는 곧 이웃이 될. 선아&재형 부부의 강아지이다. 간난강아지 시절부터 만나와서 모찌의 삶에 내 지분도 상당하다. 내 시간이 흐를 때 모찌의 시간도 흐른다. 모찌의 시간은 간다. 그녀의 심장박동만큼 빠르게. 개들의 평균 심장박동수는 160bpm, 강아지 시절에는 200-220bpm이다가 성견이 되면, 대형견은 140bpm, 소형견은 180bpm, 참고로 인간의 심장박동이 70-100bpm. 그러니까 강아지의 일생은 갓 태어나서는 Metalica의 The Four Horsemen에 맞춰 심장이 뛰다가 서서히 Beyonce의 Irreplaceable에 맞춰 사는 건데. 인간이 거의 평생 Don’t Worry, Be Happy 에 맞춰 사는 것에 비하면 꽤 빠른 템포라 할 수 있다. 선아 누나네 강아지 모찌는 아침이 되면 잠이 덜 깬 사람들의 발가락을 핥아 다니며 격한 아침 인사를 건넨다. 강아지의 기대수명은 인간의 1/6, 즉, 인간의 하루는 얼추 강아지의 일주일. 모찌는 시간을 어떻게 볼까.

모찌 시간 걱정할게 아니라 요새 나는 시간을 어떻게 보고 있나 생각해보니, 부쩍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간은 왜 나이가 들 수록 빨리 흐르는 듯 느껴질까. 첫 째, 시간은 절대적이지만 상대적이다. 한 해 한 해가 일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점차 감소한다. 10살 일 때는 1년이 인생의 10%, 20살이되면 5% 30이 넘어가면 3% 대로 떨어진다. 어느덧, 1년은 삶 전체로 보면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니다.  둘째, 나이가 들 수록 시간을 덜 챙겨보고 덜 기다린다. 소풍, 놀이공원, 크리스마스, 터미네이터2 개봉, 디아블로 발매. 야자는 언제 끝나나, 고3은 언제 끝나나, 후름라이드 앞 줄은 왜 이렇게 긴가. 다음 주 만화점프는 언제 나오나 드래곤볼은 언제 완결되나. 지금은 이런 기다림이 없다. 기다림이 줄면 시간은 그다지 더디게 느껴지지 않는다. 셋 째, 이정표 삼아 시간을 가늠할 만한 큰 일들이 나이가 들수록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삶이 시큰둥해지는 만큼, 시큰거리는 일들도 시끌거리는 일들도 많지 않다. 입학, 학교 앞 뽑기, 달고나, 서태지 1집, 첫 자전거, 첫 급식, 교통사고, 청소년 노래방, 변성기, 졸업, 입학, 반항, 졸업, 입학, 독립, 졸업, 입대, 결혼. 이정표의 간극이 점점 멀어진다. 내 다음 이정표는 무엇이 될까.

이 정도로는 훌쩍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억울함이 풀리지가 않아 Google신께 왜 나이가 들 수록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답을 점지하니. 논문 몇 개 던져 주신다. 대부분 인지심리 및 행동심리 관련해서 Impact Factor가 0.5를 웃도는 낮은 티어 저널들이었는데. 맛들어진 글들을 보니 왠지 저자들이 즐겁게 조사했을 것 같아서 부러웠다. 학자들이 설문을 통해 밝혀낸 결과에 의하면 사실 나이는 큰 변인이 아니고, 결정적인 요소는 *Time Pressure 라는 개념인데. 시간에 의한 압박의 강도가 클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사람들이 대답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면서 봐온 각종 시험들;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능, TOEIC, TOEFL, GRE. 한 두 시간 시험 중에 느낀 시간의 속도감은 일상의 한 두 시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지금도 시간의 압박 속에서 데드라인이 정해진 프로젝트나 보고서 마감, 납기가 있는 일들을 할 때, 하루는 또 일주일은 어디로 사라지는가 생각해보면. 그래. 나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스트레스, 스트레스, 머리 속을 맴도는 끝마치지 못한 일들의 망령들이 시간을 좀 먹고 있었다!

일년 째 차에 걸려있는 아델 씨디를 들었다. 4번 트랙, When We Were Young. 절절한 목소리에. 겨울비까지 오는데. 4분 여 시간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에 발이 걸려 자꾸만 넘어진다. 점점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천천히 젊음으로 매번 돌아가게 해주는 묘약은 기억이다. 이정표들을 따라 되돌아간 기억 속에 나는 아직도 20대 초반 언저리에 머물러있었다.

선아&재형네 집에서 코스트코에서 사온 짜장에 전날 굽고 남은 목살들을 함께 볶고, 군만두와 함께 먹고 있으니 모찌가 노려본다. 일단 한 그릇 비우고, 모찌를 안아 소파로 간다. 야들야들한 배를 맡기는 모찌. 모찌에게 정신을 쏟는 그 몇 십 분이, 집 안으로 성큼 여문 정오의 햇살과 달달하게 흐른다. 모찌는 장수할거다. 모찌가 등을 내민다. 식탐도 없고 운동도 좋아하고 어딜 가도 사랑 받으니. 이제 생후 14개월. 하지만 몸은 이미 다 컸다. 지금 모습 그대로 15년을 함께 하겠지. 겉모습은 멈춘 듯 그대로, 그래도 모찌의 시간은 숨가쁘게 흐른다. 눈 깜빡 할 사이에 그녀의 하루는 간다. 우리가 커피 한 잔 하는 사이에 모찌의 반나절이 사라진다. 우리가 하루를 보내고 잠을 자고 일어나면 그녀의 일주일이 지나있다. 모찌가 긴 하품을 한다. 모찌는, 계산이 없는 모찌는, 사랑을 주고만 가기에도 부족한 삶이라는 것을 안다. 아침에 눈 뜨면 혀를 휘날리며 내게 달려온다. 한껏 앞 발을 뻗어도 겨우 내 정강이까지지만, 밤 사이 그녀의 그리움이 한 뼘 자라 있는 것을 본다. 고맙게도, 매일매일 숨가쁘게 달리는 사랑을 본다. 그 작은 앞 발로. 멈춰 있는 내 등을 떠민다.

그래. 시간의 흐름 따위, 개나 주라지.

*Janssen, S.M.J., M. Naka, and W.J. Friedman. 2013. Why does life appear to speed up as people get older? Time & Society 22(2): 274-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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