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글렀다.

어째서 모두들 생일이 1월 1일인걸까. Refugee Services 부서에서 일하던 시절,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소말리아 사람들의 생일이 1월 1일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그 이유가 사실은 난민신청 과정 중 의사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그리고 행정편의를 위해 담당자들이 임의로 난민들의 생일을 기억하기 쉬운 1월 1일로 정해버렸기 때문이라는 암묵적 관행에 더욱 놀랐다.

아이티에서는 1월 1일이 새해 첫 날이면서 동시에 독립기념일이다. 1804년 1월 1일, 아이티는 13년에 걸친 무장투쟁 끝에 캐리비안 연안 식민지들 중 가장 먼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다. 아이티 투사들이 독립을 선언하자마자 한 일은 거대한 솥에 수프를 끓이는 일이었다. Soup Joumou 라고 불리는 호박수프는 고기와 당근, 양파, 샐러리, 양배추, 그리고 그리고 winter squash 라고 불리는 호박과의 야채를 잔뜩 넣어 만든다. 이 수프는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들과 몇몇 노예 감시인들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수프였다. 노예들에게는 오직 멀건 밀가루 죽 만이 허락되었을 뿐이었다. 자유를 얻자마자 아이티 사람들은 그 동안 그들에게 금지되었던 수프를 만들어 나누어 먹었다. 뜨끈한 자유가 위장에 닿았다. 그리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온다. “맛은 그냥 그래요.” 수프를 먹으면서, 그들은 자유의 소중함을 생각해보려고 한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벅찬 자유도 그냥 그런 맛이 된다. 시작은 그렇게 거창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2017년은 이래저래 바삐 살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 이유로 계획 한 일들에는 치즈처럼 구멍이 송송 뚫리고 말았다. 올해는 그냥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마음 가는 대로, 몸 가는 대로.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조금 덜 무식하고, 조금 더 건강하면 그걸로 됐다.

C.S. Lewis 의 『나니아 연대기』 에 사자의 형상을 한 창조주 아슬란이 등장한다. 그가 세상을 창조하고, 생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농담이었다. 모두들 한바탕 웃고는 각자의 길을 간다. 시작은 그렇게 거창할 필요가 없다. 다시 생각해보니, 사실 일단 웃고 시작할 수 있는 배짱만큼 거창한 것도 또 없다. 모르겠다. 올해도 글렀다.

1달러 25센트짜리 2분

퇴근길은 출근길보다 막힌다. 출근길은 40분에서 45분. 퇴근길은 1시간에서 1시간 반정도 걸린다. 수백번을 왕복한 터라 길이야 훤히 알지만 네비를 켠다. Waze를 쓴다. 언젠가부터 네비는 교통량에 따른 우회로를 제안한다. 훌륭한 기능이다. 대부분 그 제안을 수락한다. 아주 가끔 내 의지로 제안을 거절했을 때, 네비의 도착예정시간 보다 빨리 도착하면 그 쾌감을 이루어 말할 수 없다. 대신 고집부리다 예정시간보다 늦으면 좌절한다. 인공지능의 승률이 월등히 높다. 삐약이 주제에 이세돌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여느 때처럼 i93N. 북쪽으로 난 고속도로를 탄다. 한 번 고속도로를 타면 도심을 지날 때까지는 선택권이 없다. 하지만 도심을 지나면 선택의 여지가 많다. 보스턴 시청과 노스엔드가 있는 23번 출구로 나가서 시내로 가는 길이 있다. 아니면 계속 고속도로를 달려 26번, 27번, 28번 출구를 고를 수도 있다. 출구 밖 상황에 따라 네비는 다른 제안을 한다. 수시로 경로를 재탐색한다. 경로를 재탐색하면 예상도착시간이 줄어들거나 늘어난다.

네비 기능설정에서 유료도로를 포함하면 비용에 관계없이 최단시간 경로를 제안한다. 연말이라 도시에는 차가 많다. 26번, 28번은 무료도로다. 27번 Tobin Bridge로 우회하면 1달러 25센트를 내야한다. 오늘 네비는 경로를 재탐색하여 나에게 27번으로 나갈 것을 제안했다. 28번 출구보다 27번 출구의 예상도착시간이 2분 빨랐다. 얼핏 보기에도 28번 출구는 차가 빽빽하게 줄지어 있었다.

나는 고민했다. 2분의 시간과 1달러 25센트. 한시간으로 계산하면 37달러 50센트. 내가 버는 시급보다 많았다. 노동하지 않는 동안 내 시간은 얼마일까. 내 2분의 기회비용은 얼마일까. 내가 27번 출구를 택함으로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1달러 25센트를 지불함으로서 나의 하퇴삼두근과 아킬레스건은 2분만큼 노동을 덜한다. 나의 시신경, 긴장된 승모, 긴장된 승모로 인한 불균형한 근육발달, 그로 인한 스트레스, 교통체증으로 인한 스트레스. 스트레스로 인한 스트레스. 스트레스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한 스트레스.

주차장에 도착해서 시동을 켜 둔 채로 쳇 베이커의 Alone Together의 마지막 2분을 들었다. 재즈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요새는 하루종일 쳇 베이커를 듣는다. 아무 곡이나 들어도 멜로디가 좋길래 그냥 듣는다. 재즈는 정말 모르겠다. 재즈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은 참 재주도 좋다. 나는 재즈와도 도시와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어제의 나는 28번 출구를 택했다. 오늘의 나는 27번 출구를 택했다. 앞으로 같은 상황에서 나는 쳇 하고 27번 출구로 갈 것이다. 그리고 1달러 25센트 짜리 2분을 맛지게 소비할 예정이다. 가급적이면 매번 다른 방식으로.

Chet Baker – Alone Together

https://youtu.be/zdDhinO58ss

그리움에는 이유가 없다.

사관학교에서 함께 일하던 Dan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Dan은 한국에 사는 캐나다 사람이고, 나는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사람이다. 너는 왜 거기 있고, 나는 왜 여기에 있니. 공평하게 이 말을 한 번씩 주고 받았다.

더 많은 책임이 주어진다면 더 잘 해낼 친구라는 것을 나는. 안다. 좋은 인재가 있어도 활용 못하는 집단이 있고, 좋은 자리가 있어도 마땅한 인재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의 고민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그의 고민은 나의 고민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사관학교 관사에서 Dan과 나는 이웃으로 2년을 살았다. 나는 그가 키우는 심장병이 있는 러시안 블루 고양이와는 아주 어렵게 안면을 텄다. 거리에서 데려와 나이도 종도 정확하게 모르는 강아지와는 쉽게 친구가 되었다. 그가 새 차를 사고 일 주일도 채 되지 않은 어느 퇴근길에 사슴을 치었다. 사슴은 무사했지만 그의 마음은 다쳤다. 우리는 박살난 앞 범퍼를 함께 고치러 갔었다. 곧 그의 마음도 고쳐졌다. 그의 집에서 몇 번의 햄버거 파티를 했고, 매주 목요일 마다 체육관에서 농구를 했다. 동료의 죽음에 함께 애도했고, 돼지갈비에 매화수를 나눠마시다가 나만 술병이 나서 며칠을 앓았다. 나는 술자리에서 그에게 ‘앉은뱅이술’ 이라는 단어를 가르쳐 주었고, 확인해본 결과 그는 아직도 그 단어를 기억한다. Dan이 나에게 묻는다.

“잘 지내? 미국은 어때?”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거짓말이다. 사는 건 다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똑같은 삶이란, 수요미식회를 진행하면서 온갖 산해진미를 다 먹고 다니는 신동엽으로부터 질투를 느낄 필요가 없는 삶이다. 또는, 차로 10분 거리에 어디에나 먹을 만한 순대국밥 집이 있는 삶이다. 지금 이곳에서 순대국밥을 먹기위해서는 우선 밥을 얹히면서 쌀뜨물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마늘, 간장, 된장을 넣어 푹 삶은 목살을 냉장고에서 식혀 굳혀 머릿고기 느낌으로 얇게 썰어야한다. 고기 삶은 물에 쌀뜨물을 넣고 액젓으로 간을 하고, 마트에서 사온 Napa Cabbage와 Chive를 썰어 넣는다. 냉동순대도 구할 수는 있다. 봉투 채로 쪄서 썰어서 식힌다. 순대는 (가짜)머릿고기와 국물을 기다린다. 결국 순대국을 순대국 답게 만드는 것은 들깨가루다. 충분히 넣는다. 다대기를 만들어 종지에 담고, 밥을 푼다. 먹는다.

이번에는 내가 Dan에게 묻는다.

“잘 지내? 한국은 어때?”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거짓말이다. 사는 건 다 다르다. 우리는 서로의 거짓말을 눈 감아 줄 만큼 오랫동안 똑같은 삶을 함께 살았다. 다르게 사는 우리는 똑같은 거짓말을 한다.

그리움에는 이유가 없다.

방울

로펌 5년차에 보스턴으로 연수를 갔다. 딸 시은이가 태어나기도 전. 남편은 김천지검에 신임검사로 있을 때라 한국에 남았다. 미국에 도착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모든 것이 새롭던 시절. 함께 연수를 받던 동기들과 100년도 넘은 사설 장례식장을 견학 할 기회가 있었다. 장례식장임을 알리는 금박을 입힌 “Funeral Home” 간판을 제외하고는 주변 가정집들과 차이가 없었다. 박공지붕이 다섯 개가 되는 큰 규모의 구조물은 장례식장으로 쓰이는 본채와 장의사 가족의 거주공간인 별채로 나뉘어 있었다. 지하로는 별채와 본채가 이어져 있었는데 넓은 지하 공간에 준비실과 시체 안치실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들어선 본채는 삼대째 내려온다는 장례식장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게 청결했다. 시체운반용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휠체어를 탄 잭슨과 한 무리의 친구들은 몸을 괜히 과장스럽게 부르르 떨며 엘리베이터의 문을 닫았다. 나와 나머지 동기들은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빅토리아풍의 부드러운 조명과 벨벳으로 장식된 의자들로 포근함 마저 느껴지는 그 곳에서 내 생애 처음, 낯선 시체를 보았다. 홈리스로 추정되는 무연고 시체라고 했다. 네모난 철제 문이 열리고 하얀 천으로 쌓인 사람의 형체를 담은 선반이 스르륵 미끄러져 나왔다. 나는 그 형체의 발목을 먼저 만날 수 있었다. 발목에는 작은 방울 달려있는 고무줄이 끼워져 있었다. 동기 중 한 명이 장의사에게 물었다.

“이 방울은 뭐죠?”

장의사는 다시 선반을 밀어 넣으며 대답했다.

“미신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저희 업계에서는 일종의 안전장치입니다.”

“안전장치요?”

“아주 드물게 사망하신 줄 알았던 분들이 깨어나는 경우가 있거든요. 물론 요새처럼 병원에서 사망선고를 받는 경우에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만.”

다른 동기 한 명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방울 소리 덕분에 살아난 시체가 있었나요?”

살아난 시체가 아니라, 생명을 건진 사람이겠지. 나는 속으로 생각했지만, 모두들 맥락을 이해한 모양이므로 잠자코 있었다. 아니면 내가 영어가 짧은 까닭일까. 장의사가 대답했다.

“네. 있었습니다. 딱 한 번이지만.”

모두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1930년대에 할아버지가 지금 제 자리를 지키던 시절에 말입니다. 늦은 밤 난산을 하다가 숨을 거둔 젊은 여성이 있었습니다. 조산사가 사망신고를 하고 여성의 시체는 이곳으로 옮겨졌지요. 다행히도 아이는 무사했습니다.”

어느새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던 뒷 줄 동기들도 고개를 들어 장의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체가 들어온 시각이 새벽 세시 쯤이었다고 했는데, 할아버지는 그날따라 잠을 못 이루고 거실에서 포크너의 신간소설을 읽고 있었다고 했지요.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였던가. 별채 1층에 있는 거실은 예나 지금이나 시체 안치실 바로 위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서 계신 이 곳 바로 위가 그 거실입니다. 아무튼, 새벽 네 시나 되었을까. 할아버지가 희미한 방울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방울소리는 지하에서 들려오는 것이었지요. 처음에는 귀를 의심하였으나 자세히 귀를 기울여보니 틀림없는 방울 소리여서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내려가 보았다고 했습니다. 방울소리는 얼마전에 들어온 젊은 여성의 시체 저장고에서 들려오고 있었지요. 시제 저장고에 가까워오니 작게 흐느끼는 여성의 목소리도 들렸답니다. 문을 열어보니 여성의 발목에 달린 방울이 흔들리고 있었지요.”

그때 갑자기 벽에 걸려있던 전화기에서 벨이 울렸다. 모두들 긴장했던 터라 전화벨 소리에 놀라 몸을 움추렸다. 장의사는 성큼성큼 전화기 쪽으로 걸어갔다. 장의사의 파트너가 차와 쿠키를 준비해두었으니 언제든 올라오라는 것이었다. 장의사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는 황급히 선반을 잡아 당겼습니다. 보시는대로 저장고 안에는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습니다. 천을 걷어보니 죽은 줄 알았던 여성이 옅은 숨을 내쉬며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라고 힘 없이 외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바로 911에 신고를 했지요. 바로 저 전화기로요.”

장의사는 아까 파트너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벽에 걸린 전화기를 가리켰다.

“곧 응급요원들이 들이닥치고 죽은 줄 알았던 그 여성을 병원으로 실어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신문에도 대서특필되어 지역신문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보도가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도 그 여성의 소식을 신문 지면을 통해 들을 수 있었지요. 의사들 말로는 사실 가사상태에 빠졌던 여성이 시체 저장소로 바로 이송되어 온 덕에 저체온 상태에서 뇌손상을 막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혈액공급이 원활해진 덕에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이죠. 의식을 차린 여성은 바로 아이부터 찾았고, 결국 아이와 엄마는 재회할 수 있었죠.”

모두가 박수를 쳤다. 하지만 장의사의 표정은 왠지 어두워보였다. 박수 속에서 누군가 장의사에게 물었다.

“실수로 사망선고를 내린 조산사는 처벌을 받았나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그가 몸을 돌려 계단을 향하자 박수가 잦아들며 모두들 그를 따랐다. 휠체어에 탄 잭슨과 그 무리는 엘레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모두들 시체 안치실의 한기로부터 벗어나 따뜻한 차와 달콤한 쿠키를 맛볼 생각에 들떠있는 듯 보였다. 계단에 막 한 쪽 다리를 올리면서 장의사는 고개를 돌려 우리에게 말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일주일 후에 죽음에서 돌아왔던 그 여성과 재회하게 됩니다.”

모두가 발길을 멈췄다.

“재회라니요?”

“그녀가 다시 이곳으로 사망한 상태로 돌아오게 된 것이지요.”

“그게 무슨…”

우리는 모두 아연실색하여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간신히 죽음에서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 의료기술로는 그녀를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은 없었던 것이었겠죠. 하지만 그날 할아버지는 돌아온 그녀의 발목에 다시 방울을 달면서, 그녀가 또 한번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기적은 두 번 일어나지 않았죠. 그래도 그녀는 한 번은 살아 돌아와 아이를 만날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겠죠. 자, 이제 그만 올라가죠.”

별채는 아늑했다. 장의사의 파트너는 콧노래를 부르며 오븐장갑을 낀 채로 우리를 맞이했다. 차는 따뜻했고, 과자는 부드러웠지만. 아무 맛도 느낄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신 트름이 올라왔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사실 그 때 이미 배 안에 시은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신호대기에 버스가 멈췄다. 창문을 여니 가로수로 심은 아카시아나무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심호읍을 하니 속이 조금 진정되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자꾸 방울소리가 들렸다. 올망졸망한 아카시아 나무의 하얀 꽃방울들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향기는. 기억에 없다.

#단편

바람은, 좀처럼 내 바람대로 불지 않는다.

바람은, 좀처럼 내 바람대로 불지 않는다.

NGO, NPO, 그리고 사회적 기업. 모두의 바람이 있다면 회사 본연의 공익적 취지는 살리면서 눈치보지 않고 운영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 걱정 없는 공익사업은 불가능하다. Non-profit에서 일하면서 얻은 깨달음 하나. 공익만 지나치게 강조하여 지원금에 의존하면 결국 경쟁력과 자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JVS-Boston의 주요업무 중 하나는 이민자와 난민들(clients)을 교육하여 회사에 취업시키는 일이다. 미국정부(Federal Funding), 주정부(State Funding), 시장직할 인력개발부서(Mayor’s Office of Workforce Development)에서 그리고 유태인계 재단인 CJP로부터 회사 운영비의 상당부분에 해당하는 지원금이 들어온다. 하지만 수 년간 회사의 규모를 키우면서 전체예산에서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줄이고, 서비스를 통한 매출비중을 높여오고 있다. 파트너쉽을 맺은 대기업들은 일부는 세금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부금의 형태로, 일부는 정당한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우리에게 지불한다.

우리가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들 중 파트너사(社)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분야는 다음과 같다.

– 난민과 이민자의 신원조회 및 범죄기록사실 확인

– 기본 비즈니스 영어와 문화 교육

– 컴퓨터, 접객, 약학보조, 간호보조, 은행업무보조 등 분야별 직업교육

– 기업의 필요에 따른 재교육, 맞춤형 보충교욱

– 기업현장에 영어교사 파견

교육NPO 로서 JVS-Boston의 특징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신원을 보증하고, 기본 교육과 보충교육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각각 파트너사의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파트너사들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익은 비용절감과 위기관리이다. 이 두 가지는 모든 회사들이 역점을 두는 부분이므로 공익이라는 명분은 거들 뿐, 파트너사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 준다. 점차 파트너사를 식품가공, 요식업, 유통을 넘어 의료, 금융 관련사로 확대하여 매출 증대를 꾀하고 있다.

매출 증대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영향받기 위한 무상지원금을 줄여 NPO로서의 자생력을 높이는 의의가 있고, 나아가서는 지원 주체가 간혹 꺼리는, 특정국가 난민문제, 성적 소수자 문제 등에 유연하고 자의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 더 큰 의의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회사 입장이고, 현장에서 내가 느끼는 안타까움들도 많다.

회사가 수익 사업에 역점을 두기 시작하면서 파이를 키운다는 명목 하에 클라이언트들의 적극적인 취업이 강조되었다. 일부 담당직원들(career coaches)에게 클라이언트들의 취업실적이 할당량처럼 부과되는 NPO답지 못한 일이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클라이언트들의 적성이나 커리어계획을 고려하기보다는 최단시간 내에 취업을 강요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게다가 회사가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들 중 취업관련성이 떨어지는 일반교육에는 배정되는 예산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회사의 덩치가 커진만큼 등잔 밑 그늘이 깊어졌다.

내가 직접 관여하고 있는 프로그램에도 피바람이 불 예정이다. 반(反)이민자 정책을 펴는 트럼프도 트럼프지만, 오바마대통령 임기 말 제정한 *WIOA가 가져온 여파다. 취지는 좋았으나… JVS-Boston의 인적 물적 자원이 취업교육에 집중되면서, 경제활동인구 범위 밖의 장년층, 그리고 사회보장번호가 없는 불법체류외국인들은 당장 법안이 발효되는 내년 하반기부터 우리 회사가 제공하는 교육 및 지원 서비스들을 받기가 어려워진다.

바람은, 좀처럼 내 바람대로 불지 않는다.

*WIOA (The Workforce Innovation and Opportunity Act) : 미국 노동부(DOL), 교육부(EL), 보건복지부(HHS)가 연대하여 지역 단위로 저소득계층에게 집중적인 취업교육을 제공하도록 하는 법안. 저소득층의 실업률과 사회보장기금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창은 좁고, 빛은 방문을 넘지 못했다.

창은 좁고, 빛은 방문을 넘지 못했다.

수능이 일주일 연기된 수험생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수능이 끝나도 삶은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지 않는다. 지겨운 입시만 끝나면 도장 찍듯이 꾹꾹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온전히 사는 날 보다 억지로 살아지는 날이 더 많다. 아둥바둥 사는 삶이 왜인가 생각해보니, 능력보다는 운 좋게 얻어걸린 기회들 때문은 아닌가 싶었다. 우울한 생각들은 나 자신이 토크니즘의 희생양-수혜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들게 만들었다. 소수자의 삶이란 그렇다. 차별 받으면 억울하고, 우대라도 받으면 차별을 은폐하기 위해 구색 맞추기용으로 추켜세우는 건 아닌가 불안하다. 자격지심과 자괴감을 떨쳐내다가 에너지를 허비하고, 일주일이, 때로는 한달이 뭉텅뭉텅. 시공간의 임의의 위치에서 사라지곤 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자동차 타이어 압력이 낮다는 경고가 떴다. 점검 예약을 위해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걸 요량으로 조용한 2층 빈 강의실로 무심코 들어섰다가 깜짝 놀라 뒷걸음치고 말았다. 창이 작아 빛도 간신히 구석에 자리를 잡는 어두운 방이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빛 정도 크기의 스카프를 바닥에 펼쳐 놓고, 무슬림 학생 하나가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바닥에 놓여진 스마트 폰 화면에는 메카를 향한 화살표가 빛나고 있었다. 그 화살표는 공교롭게 작은 창을 향해 있었다. 그 광경으로부터 묘한 편안함과 위태로움을 동시에 느낀 나는,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방에서 나왔다.

어쩌면 나는 평화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걸까. 창은 좁고, 빛은 방문을 넘지 못했다.

예견된 비극은 없다.

오늘 아침 한 학생은 낡은 지프가 고장이 났다고 했다. 그래도 차는 빨리 고쳐야 한다. 지체장애가 있는 두살바기 아가를 둔 미혼모이다. 유아원도 가고 병원도 가려면 차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제 또 다른 학생은 집에 불이 났다. 다행이 인명피해는 없다고 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전기난로를 켰다고 했다. 잠이 들었다가 타는 냄새에 깨어보니 커튼에 불이 붙어있었다고 했다.

매니저 로리는 2주 연속으로 같은 친구가 상주인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첫 번째는 친구의 어머니, 두 번째는 친구의 동생.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비극은 그냥 그렇게 무심히 일어난다.

나는 한 사람의 총기난사로 인해 59명이 죽고 5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나라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이미 국제 마라톤 대회의 말미에 폭탄 테러가 일어났던 도시다. 가능성의 문은 늘 활짝 열려있다. 만약에. 라고 생각하는 순간, 공포가 엄습한다. 야구장에서도 콘서트 장에서도 축제 현장도 어쩌면 평범한 출근길 아침도.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한다. 삶은 운에 맡긴다.

또 다른 걱정도 있다. 무차별 총격에 의한 피해자들. 가해자는 사망했고 피해자들의 보상을 책임질 주체는 요원하다. 의료비용부터 대부분 각자의 보험에 의지해야하고, 상처받은 정신, 학교, 직장, 삶에서 잃어버린 시간들, 그리고 잃어버릴 시간들은 보상받기 어렵다. 이미 올랜도 나이트클럽(2016), 샌 버나디노의 복지센터(2015), 샌디 훅 초등학교(2012)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피해자들 중 상당수는 일차적으로는 국가가 허락한 총기에 피해를 입고, 이차적으로는 방만한 의료보험제도로 파탄에 이르렀다.

미국은 거대하고 붐비는 자본주의의 실험장이다. 미국은 결코 위대한 나라가 아니다. 위대했던 적도 없었다. 그러므로 다시 위대해 질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교만한 나라다.

오이디푸스 서사에서 오이디푸스의 교만이 그의 삶을 비극으로 이끈다. 오이디푸스는 재능이 많다. 그는 신과 대적할 수 있는 힘을 지녔으나 충동적이다. 천부적 재능은 운명과 결탁하여 결국 악을 행하고 만다. 총기소유. 자기방어를 위해서 쓸 수 있다는 그 교만이 모든 미국인의 삶을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동어반복적인 죽음들. 동어반복적인 정당화. 다시 동어반복적인 죽음들.

예견된 비극은 없다.

Aging

age_of_adaline_poster

흰머리가 생겼다. 노화가 찾아왔다. 찾아왔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노화는 항상 진행중에 있었으므로. 나 스스로 변화를 관찰할 지표가 하나 더 생겼을 뿐이다라고 애써 의연하려 하는 중이다.

“The Age of Adaline” 라는 영화를 보았다. IMDB 평점 7.2 에 Rotten Tomato 지수54%. 수치상으로는 무난한 영화라는 뜻이다. 할리우드 서사공식을 따르고 대중에게 어느정도 성공적으로 영합했다는. 이디스 워튼의 “The Age of Innocence”를 변주하여 중의적으로 지은 영어제목은 애덜라인의 시대, 혹은 애덜라인의 나이로 해석될 수 있겠다. 국내개봉 제목은 줄거리를 그대로 담은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 네이버 평점은 7.7. Blake Lively가 주연을 맡았다. 정제된 톤과 고풍스러운 의상. 그녀의 대표작인 미드 “Gossip Girl” 보다 훨씬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Aging에 대한 다른 시각으로의 고찰은 젊은 육체가 숭상받는 할리우드에서도 그렇게 새로운 주제는 아니다. 피츠제럴드의 단편을 원작으로하는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이라던가 니페니거 원작의 “The Time Traveler’s Wife”등의 영화에서 이미 다룬 바가 있었다. 완성도도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The Age of Adaline”의 Adaline은 벼락을 동반한 교통사고로 생체시계가 멈춰 젊은 모습 그대로 영생을 살아가는 축복(?)을 누린다. 모두가 갈망하는 영원한 젊음이 저주가 되는 지점은 Adaline이 키우는 강아지들이 몇 대를 거쳐 노화로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고, 결정적으로는 수 십 년 째 30대의 외모를 자랑하는Adaline과 이제 70을 바라보는 그녀의 딸이 식사를 하다가, 딸이 스스로 몸을 돌보는데 힘에 부쳐 이제 양로원에 들어가고 싶다고 Adaline에게 고백하는 장면에서이다. Adaline은 자신이 가진 불노(불사는 아니다)의 비밀을 쫓는 FBI를 피해 일정 기간마다 흔적을 지우고 이름을 바꾸면서 새 삶을 만들어간다. 그녀가 틈틈히 텅빈 창문을 응시하며 내쉬는 한숨은, 영원히 젊지만 정체성은 희석되고, 사랑은 유통기한이 짧고, 영혼은 외롭게 부유하는 무한한 삶의  궁극적 무의미를 보여준다.. 결국 그녀는 우연한 기회로 다시 생체시계의 멈춤 버튼을 해제하는 데 성공한다. 새로운 사랑과 파티장에 가려고 분주히 준비하는 저녁, 거울을 보다 굳은 듯 멈춰선다. 흰머리.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머리에서 흰머리를 발견하며 미소짓는다.  Adaline의 영원한 젊음은 모두가 바라는 Anti-Aging에 대한 역설이다. 그녀는 기쁘게 well-dying의 세계로 재 진입한 자신의 육체를 받아들인다.

지난 달 미국의 패션 잡지 Allure는 Anti-Aging이라는 단어를 자사의 매체에서 금지시키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은 Aging은 반드시 반(反)해야하는 것인가에 대한 재고에서 시작되었다. 여성들을 지나치게 대상화하는 사회에서, 그동안 주름이라던가 기미나 검버섯은 싸워 없애야할 노화의 적이었으며, 보톡스와 필러가 anti-aging의 가장 큰 수혜자였다. 그렇다면 이제 주름제거와 미백등 노화방지 기능이 추가된 화장품을 어떻게 부르는가하면 브랜드 별로 Pro-Age (Dove), Age-Defying (Olay), Age Perfect (L’Oreal) and Slow Age (Vichy) 등으로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의미를 담고자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Aging이라는 용어가 덕을 보는 분야도 있다. 고가의 주류와 숙성 소고기 시장이다. 와인과 위스키는 오크통 안에서, 소고기는 때로는 wet 하게도 아니면 dry하게도 Aging하며 몸값을 불린다. 지금은 부상으로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지만 스페인과 이탈리아 리그를 거쳐 프랑스 리그까지 평정한 후, 최전방 공격수로는 은퇴시기를 한참 지난 37세의 나이에 EPL 데뷔를 앞두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스스로를 와인에 비유하며 말했다. “자신은 와인과 같아서 나이가 더 들 수록 더 강력해진다” 라고. 그리고 자신의 호언장담을 실력으로 증명해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시간의 풍파를 담은 얼굴의 점과 선들이 훈장인지 아니면 싸워 이겨 없애할 대상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젊은 시절 당대를 호령하던 한 러시아 여배우는 70대가 되어 자신을 찍는 사진작가에게 절대 포토샵을 하지 말고 원본 그대로 사진을 실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 가득한 주름 그대로 미소를 띈 채 사진작가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제 주름을 지우지 말아주세요. 이 사랑스러운 것들을 얻는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요.”

서태지

문득 서태지를 듣고 싶은 아침이었다. 차에 타서 시동을 걸었는데 “서태지!” 하고 누가 귀에다 외친 것처럼. 벅스로 서태지 전곡 싹 긁어서 틀어놓고 며칠 출퇴근을 했다.

1992년 봄, 아버지가 퇴근하시면서 카세트 테잎 하나를 내게 휙 건네셨다. “고놈 음악 요망지다. 뜰 것 같아.” 이제는 내일 모레 70을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음악 일을 하시는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계셨다. 90년대에 음악기획사도 잠시 하다 접으셨는데. 아쉽다. 그 안목. 아버지는 지금도 취미가 뮤직비디오 감상이다. 몇 년에 한 번 집에 돌아가면 아버지가 컴퓨터 앞에 앉아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미간 주름으로 보고 계시는 모습을 맞닥뜨리게 된다.

아무튼,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는 특종 TV 연예 첫 회에 이루어졌는데. ‘신곡 무대’ 라고 신인가수의 곡을 작곡가, 작사가, 그리고 선배가수가 들어보고 신인가수에게 평점과 함께 조언을 해주는 코너였다. 지금도 레전드 영상으로 남아 있는데, 서태지는 7.8의 평점과 멜로디 라인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리고 나서 비웃기라도 하듯 각종 지상파 음악프로들에서 17주 연속 1위를 해버린다.

지금의 서태지를 만든 곡은 ‘난 알아요’이지만 나는 1집 앨범을 고루 좋아했다. 특히 ‘이제는’ 이라는 곡을 좋아했었는데. 지금 들으면 촌스럽다. 하지만 2008년 ETP Festival에서 15년 만에 ‘이제는’의 Remake 버전을 발표하는데, 최근에 '응답하라 1994' 수록곡으로 유명해진 ‘너에게’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오글거리는 나레이션만 넘기면 어렸을 때 좋아했던 곡을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즐겨 들을 수 있게 되어 고맙다.

내 고마움과는 별개로 20세기의 서태지는 21세기에 들어 숱한 삶의 고난과 마주하는데, 인터넷의발달로 밝혀진 서태지의 초기 곡들에 대한 표절 논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이혼(결혼 소식 전에 이혼 소식을 먼저 들음 )과 재혼(결혼-이혼-재혼 소식을 동시에 들음)으로 그의 신비주의를 겸한 잠적은 극에 달한다.

그 후에 발매된 2014년 Quiet Night 앨범을 들어보았다. 그나마 최신 앨범이라 생각만큼 많이 들어보지 않아 몇 곡들은 새로웠다. 원래도 서태지가 미디를 많이 쌓아 올려 곡을 만드는데, 여전히 고가의 미디 장비들로 만든 곡들이라 Flac 파일도 아닌데 웬만한 뮤직플레이어들로는 감당을 못하는 느낌. 키덜트 서태지가 자택에 틀어박혀 애니메이션 보고, 게임 하고, 미드 보고, 아직도 세계 7대 미스터리를 궁금해하고, 할로윈과 크리스마스에 설레하는 등의 자신이 즐기는 것을 앨범에 마구 담은 느낌.

나는 음악가와 음악을 동일시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타이틀곡 소격동을 부르는 서태지는 내가 좋아하는 서태지다. 서태지가 유년시절을 보낸 소격동은 5공시절 기무사 자리로 민간 사찰 및 청년들의 강제징집이 이루어진 곳이다. 늘 사회비판적인 음악을 발표하는 그가 건재를 과시하듯 자신의 장난감처럼 만든 앨범 가운데에 진지하고 꽉 찬 한 방을 준비해 두어 고맙다.

오늘은 하루종일 서태지를 듣는다.

 

나는 삶을 읽는다.

나는 삶을 읽는다. 공터 잡초들로, 막 알에서 깨어난 연회색 아기 거위들로, 유모차를 채우는 아기 웃음소리로, 농구코트 온통 땀방울로 가득한 계절. 말랑말랑한 것들이 세상을 메우는 동안에도 삶은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에 걸려있는 화살처럼 발사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죽음에 관한 글을 쓴다.   

회색 수염을 잔뜩 기른, 키가 190cm은 넘어 보이는 연사가 단에 올랐다. 불과 4주 전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동료의 공로상을 대리 수상하는 자리에서 불쑥 연사가 자신의 아들을 사고로 잃었을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많은 위로전화와 편지들을 받았고, 그의 경황을 묻고 걱정하는 사람들을 응대하면서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차츰 사람들의 연락이 줄어들 무렵 느지막이 동료가 찾아왔다. 오래 알고 지냈지만 집으로 그가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잘 여문 위스키가 한 순배 돌자 동료가 말했다. 자네 아들이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들으러 온 것이 아닐세. 자네 아들이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들으러 왔네. 연사의 아들은 철새 서식지 돌보는걸 좋아했다. 아들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그 때에도 샌프란시스코 연안 볼리나스 포인트를 따라 난 철새도래지에 머물렀다. 동료는 눈이 휘둥그래진 채로 의자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내 취미가 사실 철새 관찰이라네. 더 말해보게나. 그런데 연사는 그 순간 자기가 철새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잔에 위스키를 다시 채워 들고 계단을 올라, 사고 후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했던 아들의 방으로 갔다. 마치 잠시 여행을 떠난 것처럼, 방은 주인의 부재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생생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책상에는 읽다가 만 책이 펼쳐져 있고, 침대 맡에는 아무렇게나 벗어둔 후드티가, 문가에는 아들의 손 때가 묻은 기타가 널브러져있었다. 주인을 잃은 현재진행형의 방에 둘은 우두커니 서있었다. 동료가 책상의 책을 먼저 집어 들어 연사에게 건넸다. 대충 끼워 넣은 펜이 바닥에 떨어졌다. 낯은 익지만 굳이 이름까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던 새들의 사진이 펼쳐지고, 밑줄 치던 펜이 멈춘 자리, 불과 얼마 전 까지 아들의 손이 닿았던 자리에 그는 가만히 손을 얹어보았다. 밤이 깊어 동료는 떠나고, 연사는 아들 침대에 앉아 천천히 아들이 읽다 멈춘 자리부터 책을 읽어나갔다. 철새에 대한 책이 매우 흥미롭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몇 달 동안이나 연사는 동료와 자기는 잘 알지도 못하는 철새 서식지 얘기를 나누었다. 동료는 기꺼이 그의 말 동무가 되어주었다. 아들이 살아있었다면, 그리고 자신이 철새에 관심이 조금 더 일찍 생겼었다면 이 이야기를 아들과 나누었겠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들의 죽음보다는 아들의 삶에 대한 생각이 자라났다. 이제 철새 서식지에 대해 잘 아는 둘은 죽고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자신만 남았지만, 동료를 위한 자리에서, 동료가 자신의 아들을 위해 그랬듯이, 그의 죽음 대신 그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그를 기억하자는 말을 남기고 연사는 단에서 내려왔다.  

캄보디아의 해변에서 세상을 떠난 고등학교 시절 시 선생님을 추도하는 친구의 글을 본다. 친구가 글을 아주 잘 쓰는 덕에 시 선생님의 죽음을 전혀 모르는 나에게도 그의 삶만큼은 알 것만 같다. 그를 기억한다. 노동자의 날, 공사장 붕괴로 세상을 떠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사를 읽는다. 기사에는 삶이 없다. 죽음은 숫자로 남는다. 그들을 기억한다. 

죽은 이들의 삶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글 밖에 없다. 소외된 이들에게 동아줄을 내려주는 길도 글 만한 것이 없다. 나는 삶의 이야기들을 읽고, 죽음에 대한 글을 쓰고 밤도 낮도 너도 나도 구분 없이 흐른다. 강가에 흐드러진 풀잎들을 따서 강에 뿌려다오. 스틱스든 아케론이든 레테든 만나 같이 흐르다가 함께 바다에 닿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