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좀처럼 내 바람대로 불지 않는다.

바람은, 좀처럼 내 바람대로 불지 않는다.

NGO, NPO, 그리고 사회적 기업. 모두의 바람이 있다면 회사 본연의 공익적 취지는 살리면서 눈치보지 않고 운영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 걱정 없는 공익사업은 불가능하다. Non-profit에서 일하면서 얻은 깨달음 하나. 공익만 지나치게 강조하여 지원금에 의존하면 결국 경쟁력과 자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JVS-Boston의 주요업무 중 하나는 이민자와 난민들(clients)을 교육하여 회사에 취업시키는 일이다. 미국정부(Federal Funding), 주정부(State Funding), 시장직할 인력개발부서(Mayor’s Office of Workforce Development)에서 그리고 유태인계 재단인 CJP로부터 회사 운영비의 상당부분에 해당하는 지원금이 들어온다. 하지만 수 년간 회사의 규모를 키우면서 전체예산에서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줄이고, 서비스를 통한 매출비중을 높여오고 있다. 파트너쉽을 맺은 대기업들은 일부는 세금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부금의 형태로, 일부는 정당한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우리에게 지불한다.

우리가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들 중 파트너사(社)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분야는 다음과 같다.

– 난민과 이민자의 신원조회 및 범죄기록사실 확인

– 기본 비즈니스 영어와 문화 교육

– 컴퓨터, 접객, 약학보조, 간호보조, 은행업무보조 등 분야별 직업교육

– 기업의 필요에 따른 재교육, 맞춤형 보충교욱

– 기업현장에 영어교사 파견

교육NPO 로서 JVS-Boston의 특징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신원을 보증하고, 기본 교육과 보충교육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각각 파트너사의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파트너사들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익은 비용절감과 위기관리이다. 이 두 가지는 모든 회사들이 역점을 두는 부분이므로 공익이라는 명분은 거들 뿐, 파트너사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 준다. 점차 파트너사를 식품가공, 요식업, 유통을 넘어 의료, 금융 관련사로 확대하여 매출 증대를 꾀하고 있다.

매출 증대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영향받기 위한 무상지원금을 줄여 NPO로서의 자생력을 높이는 의의가 있고, 나아가서는 지원 주체가 간혹 꺼리는, 특정국가 난민문제, 성적 소수자 문제 등에 유연하고 자의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 더 큰 의의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회사 입장이고, 현장에서 내가 느끼는 안타까움들도 많다.

회사가 수익 사업에 역점을 두기 시작하면서 파이를 키운다는 명목 하에 클라이언트들의 적극적인 취업이 강조되었다. 일부 담당직원들(career coaches)에게 클라이언트들의 취업실적이 할당량처럼 부과되는 NPO답지 못한 일이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클라이언트들의 적성이나 커리어계획을 고려하기보다는 최단시간 내에 취업을 강요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게다가 회사가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들 중 취업관련성이 떨어지는 일반교육에는 배정되는 예산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회사의 덩치가 커진만큼 등잔 밑 그늘이 깊어졌다.

내가 직접 관여하고 있는 프로그램에도 피바람이 불 예정이다. 반(反)이민자 정책을 펴는 트럼프도 트럼프지만, 오바마대통령 임기 말 제정한 *WIOA가 가져온 여파다. 취지는 좋았으나… JVS-Boston의 인적 물적 자원이 취업교육에 집중되면서, 경제활동인구 범위 밖의 장년층, 그리고 사회보장번호가 없는 불법체류외국인들은 당장 법안이 발효되는 내년 하반기부터 우리 회사가 제공하는 교육 및 지원 서비스들을 받기가 어려워진다.

바람은, 좀처럼 내 바람대로 불지 않는다.

*WIOA (The Workforce Innovation and Opportunity Act) : 미국 노동부(DOL), 교육부(EL), 보건복지부(HHS)가 연대하여 지역 단위로 저소득계층에게 집중적인 취업교육을 제공하도록 하는 법안. 저소득층의 실업률과 사회보장기금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예견된 비극은 없다.

오늘 아침 한 학생은 낡은 지프가 고장이 났다고 했다. 그래도 차는 빨리 고쳐야 한다. 지체장애가 있는 두살바기 아가를 둔 미혼모이다. 유아원도 가고 병원도 가려면 차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제 또 다른 학생은 집에 불이 났다. 다행이 인명피해는 없다고 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전기난로를 켰다고 했다. 잠이 들었다가 타는 냄새에 깨어보니 커튼에 불이 붙어있었다고 했다.

매니저 로리는 2주 연속으로 같은 친구가 상주인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첫 번째는 친구의 어머니, 두 번째는 친구의 동생.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비극은 그냥 그렇게 무심히 일어난다.

나는 한 사람의 총기난사로 인해 59명이 죽고 5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나라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이미 국제 마라톤 대회의 말미에 폭탄 테러가 일어났던 도시다. 가능성의 문은 늘 활짝 열려있다. 만약에. 라고 생각하는 순간, 공포가 엄습한다. 야구장에서도 콘서트 장에서도 축제 현장도 어쩌면 평범한 출근길 아침도.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한다. 삶은 운에 맡긴다.

또 다른 걱정도 있다. 무차별 총격에 의한 피해자들. 가해자는 사망했고 피해자들의 보상을 책임질 주체는 요원하다. 의료비용부터 대부분 각자의 보험에 의지해야하고, 상처받은 정신, 학교, 직장, 삶에서 잃어버린 시간들, 그리고 잃어버릴 시간들은 보상받기 어렵다. 이미 올랜도 나이트클럽(2016), 샌 버나디노의 복지센터(2015), 샌디 훅 초등학교(2012)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피해자들 중 상당수는 일차적으로는 국가가 허락한 총기에 피해를 입고, 이차적으로는 방만한 의료보험제도로 파탄에 이르렀다.

미국은 거대하고 붐비는 자본주의의 실험장이다. 미국은 결코 위대한 나라가 아니다. 위대했던 적도 없었다. 그러므로 다시 위대해 질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교만한 나라다.

오이디푸스 서사에서 오이디푸스의 교만이 그의 삶을 비극으로 이끈다. 오이디푸스는 재능이 많다. 그는 신과 대적할 수 있는 힘을 지녔으나 충동적이다. 천부적 재능은 운명과 결탁하여 결국 악을 행하고 만다. 총기소유. 자기방어를 위해서 쓸 수 있다는 그 교만이 모든 미국인의 삶을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동어반복적인 죽음들. 동어반복적인 정당화. 다시 동어반복적인 죽음들.

예견된 비극은 없다.

악인이 너무 많다.

악인이 너무 많다. 악인 소식지가 된 미디어를 매일 본다. 잠발라야에 들어간 익힌 소시지를 하나 베어 물면서 생각한다. 악인의 가장 추악한 면 중 하나는 무지의 활용인데, 다음의 화법을 돌려가며 쓴다. “그건 몰라도 돼.” “모르면 가만히 있어” “몰랐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모르게 하려 하고 모른다고 하고 모르려고 한다. 많은 악인들이 꿰찬 자리들은 무지로 죄를 모면하기에는 너무 책임이 큰 자리라서, 무지도. 악이다. 아니, 무지야말로 최악이다. 무지하다면 그 자리에 있지 말았어야지. 공감의 결여는 더 최악이다. 무감각하다면 그 자리에 있지 말았어야지. 악인이 너무 많다. 고국에도 잠발라야를 입에 털어 넣고 있는 이곳에도.

레스토랑 주방에서 샐러드를 만드는 일은 하는 R이 자신이 요새 레스토랑에서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고민을 털어 놓았다. 그녀는 내게 자신이 잘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R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재차 이야기 해준다. 악인이 너무 많다.

  1. 월요일, 수요일은 오후 9시반까지가 정해진 근무시간인데 종종 손님이 없이 한가한 날은 9시만 되어도 집에 가라고 일찍 보내는 경우. 게다가 일찍 보낸 30분에 해당하는 임금은 지급하지 않았다.
  2. 목요일 오후 10시까지가 정해진 근무시간인데 손님이 많아 바쁜 날은 11시까지 근무하게 하고는 시급의 50%에 해당하는 법정초과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경우. 사장은 R에게 일찍 집으로 보낸 날과 시간을 맞바꾼 셈 치란다.
  3. 눈 폭풍이 몰아쳤던 지난 토요일, 근무시간에 식당에 도착하니 다시 집에 가라고 했다고 한다. 오늘은 출근하지 말라고 음성 메시지 남겼는데 몰랐느냐면서.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폭설로 손님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사장과 매니저와 매니저 딸이 일을 하고 있었다. 가게는 닫지 않았는데 왜 출근하지 말라는 걸까. 이렇게 저렇게 일할 시간이 줄면 나갈 돈은 일정한데 들어오는 돈이 준다. 곤란하다.
  4. R의 설명에 의하면 매니저는 감정의 기복이 심해 오후 5시에 나긋나긋하다가도 오후 7시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부리는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했다. 사장은 매니저에게 인사관리부터 매장 운영까지 전권을 위임한 상태였는데, 매니저는 이른바 비선실세였다. 매니저의 딸이랑 다툼이 있었던 웨이트리스가 뺨까지 맞고 직장을 그만둔 적도 있었다고 했다. 매니저 눈 밖에 난 직원 여럿이 이미 그만 두었다고 했다. 심성이 온화하고 겁이 많은 R은 항상 매니저만 만나면 벌써 심장이 벌렁벌렁해서 가급적 피해 다닌 다고 했다.

“Equality means dignity. And dignity demands a job and a paycheck that lasts through the week” – Martin Luther King Jr.

미국의 노동법은 고용주로 하여금 연방법과 주정부법을 동시에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연방법에 의거한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 메사추세츠주의 최저 임금은 $11 (2017년 1월 1일부터 적용). 따라서 보스턴의 고용주들은 시간당 $11 달러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이 밖에도 근무시간 변동과 보상에 대한 세부조항은 정부와 주 간에 차이가 있다. 따라서 고용주들은 피고용인들에게 그들의 업무와 더불어, 권리에 대하여 설명할 의무가 있다. (일정규모 이상의 사업장은 고용내규 핸드북을 제공한다.) R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려면 일단 그 핸드북을 함께 살펴 볼 필요가 있었다.

삶이 내게 내민 지혜 하나는, 문제 해결에 어줍잖은 지식을 뽐내기 이전에 해결에 도움이 될 전문가를 찾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도서관에는 나와 함께 파견 나온 사회복지사 M이 있다. 라즈베리 초콜릿 케잌을 기가 막히게 굽는 M은 대기업 인사과에서 오래 일하다 작년에 은퇴하고 우리 팀에 합류했다. M에게 R을 데려갔다. R은 M을 만나러 가는 길에 나를 붙잡고 신신당부한다. 매니저한테 자기가 이런 이야기를 남에게 했다는 사실이 들어가면 자기는 직장을 잃을 거라고. 그러면 큰일이라며. 직장에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말아달라고. 일단 M에게 우리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물어본 후에 어떤 조치를 취할 테니 걱정 말라고 R을 안심시켜본다.

M을 만나 R은 서툰 영어로 다시 그 간의 일들을 설명했다. 그러다 감정에 복 받쳤는지 아니면 어쩌면 억울해서 또는 불안해서인지 이내 R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M은 따뜻한 말투로, 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위에 나열한 R의 문제들은 영세 사업장에서는 관행처럼 이루어지는 일이며, 시간제 레스토랑 노동자. 조합도 없는 비정규직 개인의 권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부당함에 대한 증명과 보상을 위해 긴 시간 싸워야 할 수도 있고. 싸움 뒤에는 상처뿐인 영광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나와 M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싸우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R, 네가 틀린 것은 아니라고. 틀린 것은 그들이며 네가 권리를 찾고자 그들과 맞선다면 너와 함께 하겠노라고. 그렇게 호기롭게 R에게 이야기 했지만, 현실적인 고민에 대한 우리의 현실적인 해결책은 사실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아아, 악인과 싸우기 위해 죄 없이 성실한 사람들이 감수 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민 후 첫 직장을 구할 때는 힘들었다지만 이미 2년이나 일한 경력이 있는 R에게 이직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부당한 대우를 당하며 불안해하며 다닐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이 R에게는 와 닿지 않는 모양이다. 더 나은 직장이다 하더라도. 새 직장을 찾고, 교통수단을 알아보고, 새 사람과 일에 적응하는 일련의 불확실한 모험들이 R에게는 부당하지만 확실한 현실보다 더 두려워 보인다. 일단 ‘시험 삼아’ 라도 좋으니 한 번 보자고 R에게는 새 일자리를 알아봐주기로 하고 마음에 드는 새 직장이 구해질 때까지는 지금 직장에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기로 했다.

함께 도서관을 나서면서 힘없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R은 두 개의 납작해진 초코맛 시리얼바를 내게 내민다. 자기는 오늘 이미 네 개나 먹어서 물린다며 내 잠바 주머니에 기어코 쑤셔 넣고는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손을 흔들며 먼저 저만치 걸어간다. 그날 집에 오는 길에 먹은 초코 시리얼바는 유난히 달아서 씁쓸한 나머지 나는 연신 물을 들이켰다. 그래도 쓴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어떡해야 하나. 무력감이 내성발톱처럼 속마음을 파고들 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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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를 걷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먼 발치에서 백발송송 백인 할아버지가 미간에 힘을 준 채 상체를 기울여 어린아이에게 연신 무언가 말하는 것을 보았다. 나무라는 듯 보여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가까이 가보니 귀가 어두운 할아버지와 발 뒤꿈치를 깡총 들어올린 소녀가 서로 만족스러운 거리에서 만나 소통하고 있었다. 중간 중간 할아버지는 미간의 힘을 풀어 미소를 지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심리적 안전거리라고 해야 할까. 물론 나와의 관계가 우선하겠지만 때로는 사람의 거리가 문화권이나 연령대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키 만큼 넉넉히 떨어져서 대화를 시작했다. 누군가는 코가 거의 닿을 것 같은 거리까지 다가오는 경우도 있었다. 최적치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 역시 상대에 따라 다른 심리적 안전거리를 느끼고는 했다. 누군가 너무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와 말을 건다거나 하면 문득 움찔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있었다. 아이들은 스스럼 없이 앙증맞은 체구로 바로 코 앞까지 밀고 들어와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오늘 오후 세 개의 영상을 보았다. 첫 번째는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일하는 청소부로 보이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인사하고 장난도 치고 하이 파이브를 나누는 영상이었다. 두 번째는 프란시스 교황이 시리아 난민캠프를 방문해 경호원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인파 속으로 걸어들어가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는 영상이었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에 대한 ‘그것이 알고싶다’ 를 보았다. 

나 역시 어렸을 때는 거침없이 타인의 삶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필요 이상으로 사람과 사람의 거리에 대한 걱정이 생겼다. 위계질서라는 말을 배울 무렵 이미 학생주임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은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학교, 군대, 회사 – 인간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모든 곳에서 선배이거나, 연장자이거나, 고계급자들은 분필로 선을 그어 놓은 듯 다가가기 어려운 곳 뒤로 물러나 있었다. 더 높으신 분들은 심지어 그 사이 사이 여분의 사람까지 심어 사람과 사람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거리가 멀어질 수록 소통은 고통이 되고, 공감은 무감각해지는 것을 누차 보았다. 그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살아왔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서로 꽉 안은 채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아주 멀리 높으신 곳에서는 사람이 숫자나 점으로 보였나보다. 세월호 참사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 문제 정도로 풀어낼 만큼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추모하고 연결지어 기억하지 않으면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것 같아서 용기를 내어 오늘 하루를 적어본다.

주차장 옆 화단에 노란 민들레 한 송이 피어 봄이 오나보다하고 들여다 보고 있자니, 놀이터에서 아이 하나가 쪼르르 달려와 민들레 옆에 똑 닮은 민들레 한 송이를 가져다 놓았다. 그건 왜 가져다 놓는거니 하고 물으니, 한 송이는 외롭잖아요! 하고 씩씩하게 대답하고서 아이는 또 훌쩍 뛰어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