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글렀다.

어째서 모두들 생일이 1월 1일인걸까. Refugee Services 부서에서 일하던 시절,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소말리아 사람들의 생일이 1월 1일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그 이유가 사실은 난민신청 과정 중 의사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그리고 행정편의를 위해 담당자들이 임의로 난민들의 생일을 기억하기 쉬운 1월 1일로 정해버렸기 때문이라는 암묵적 관행에 더욱 놀랐다.

아이티에서는 1월 1일이 새해 첫 날이면서 동시에 독립기념일이다. 1804년 1월 1일, 아이티는 13년에 걸친 무장투쟁 끝에 캐리비안 연안 식민지들 중 가장 먼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다. 아이티 투사들이 독립을 선언하자마자 한 일은 거대한 솥에 수프를 끓이는 일이었다. Soup Joumou 라고 불리는 호박수프는 고기와 당근, 양파, 샐러리, 양배추, 그리고 그리고 winter squash 라고 불리는 호박과의 야채를 잔뜩 넣어 만든다. 이 수프는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들과 몇몇 노예 감시인들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수프였다. 노예들에게는 오직 멀건 밀가루 죽 만이 허락되었을 뿐이었다. 자유를 얻자마자 아이티 사람들은 그 동안 그들에게 금지되었던 수프를 만들어 나누어 먹었다. 뜨끈한 자유가 위장에 닿았다. 그리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온다. “맛은 그냥 그래요.” 수프를 먹으면서, 그들은 자유의 소중함을 생각해보려고 한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벅찬 자유도 그냥 그런 맛이 된다. 시작은 그렇게 거창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2017년은 이래저래 바삐 살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 이유로 계획 한 일들에는 치즈처럼 구멍이 송송 뚫리고 말았다. 올해는 그냥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마음 가는 대로, 몸 가는 대로.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조금 덜 무식하고, 조금 더 건강하면 그걸로 됐다.

C.S. Lewis 의 『나니아 연대기』 에 사자의 형상을 한 창조주 아슬란이 등장한다. 그가 세상을 창조하고, 생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농담이었다. 모두들 한바탕 웃고는 각자의 길을 간다. 시작은 그렇게 거창할 필요가 없다. 다시 생각해보니, 사실 일단 웃고 시작할 수 있는 배짱만큼 거창한 것도 또 없다. 모르겠다. 올해도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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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 25센트짜리 2분

퇴근길은 출근길보다 막힌다. 출근길은 40분에서 45분. 퇴근길은 1시간에서 1시간 반정도 걸린다. 수백번을 왕복한 터라 길이야 훤히 알지만 네비를 켠다. Waze를 쓴다. 언젠가부터 네비는 교통량에 따른 우회로를 제안한다. 훌륭한 기능이다. 대부분 그 제안을 수락한다. 아주 가끔 내 의지로 제안을 거절했을 때, 네비의 도착예정시간 보다 빨리 도착하면 그 쾌감을 이루어 말할 수 없다. 대신 고집부리다 예정시간보다 늦으면 좌절한다. 인공지능의 승률이 월등히 높다. 삐약이 주제에 이세돌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여느 때처럼 i93N. 북쪽으로 난 고속도로를 탄다. 한 번 고속도로를 타면 도심을 지날 때까지는 선택권이 없다. 하지만 도심을 지나면 선택의 여지가 많다. 보스턴 시청과 노스엔드가 있는 23번 출구로 나가서 시내로 가는 길이 있다. 아니면 계속 고속도로를 달려 26번, 27번, 28번 출구를 고를 수도 있다. 출구 밖 상황에 따라 네비는 다른 제안을 한다. 수시로 경로를 재탐색한다. 경로를 재탐색하면 예상도착시간이 줄어들거나 늘어난다.

네비 기능설정에서 유료도로를 포함하면 비용에 관계없이 최단시간 경로를 제안한다. 연말이라 도시에는 차가 많다. 26번, 28번은 무료도로다. 27번 Tobin Bridge로 우회하면 1달러 25센트를 내야한다. 오늘 네비는 경로를 재탐색하여 나에게 27번으로 나갈 것을 제안했다. 28번 출구보다 27번 출구의 예상도착시간이 2분 빨랐다. 얼핏 보기에도 28번 출구는 차가 빽빽하게 줄지어 있었다.

나는 고민했다. 2분의 시간과 1달러 25센트. 한시간으로 계산하면 37달러 50센트. 내가 버는 시급보다 많았다. 노동하지 않는 동안 내 시간은 얼마일까. 내 2분의 기회비용은 얼마일까. 내가 27번 출구를 택함으로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1달러 25센트를 지불함으로서 나의 하퇴삼두근과 아킬레스건은 2분만큼 노동을 덜한다. 나의 시신경, 긴장된 승모, 긴장된 승모로 인한 불균형한 근육발달, 그로 인한 스트레스, 교통체증으로 인한 스트레스. 스트레스로 인한 스트레스. 스트레스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한 스트레스.

주차장에 도착해서 시동을 켜 둔 채로 쳇 베이커의 Alone Together의 마지막 2분을 들었다. 재즈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요새는 하루종일 쳇 베이커를 듣는다. 아무 곡이나 들어도 멜로디가 좋길래 그냥 듣는다. 재즈는 정말 모르겠다. 재즈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은 참 재주도 좋다. 나는 재즈와도 도시와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어제의 나는 28번 출구를 택했다. 오늘의 나는 27번 출구를 택했다. 앞으로 같은 상황에서 나는 쳇 하고 27번 출구로 갈 것이다. 그리고 1달러 25센트 짜리 2분을 맛지게 소비할 예정이다. 가급적이면 매번 다른 방식으로.

Chet Baker – Alone Together

https://youtu.be/zdDhinO58ss

그리움에는 이유가 없다.

사관학교에서 함께 일하던 Dan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Dan은 한국에 사는 캐나다 사람이고, 나는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사람이다. 너는 왜 거기 있고, 나는 왜 여기에 있니. 공평하게 이 말을 한 번씩 주고 받았다.

더 많은 책임이 주어진다면 더 잘 해낼 친구라는 것을 나는. 안다. 좋은 인재가 있어도 활용 못하는 집단이 있고, 좋은 자리가 있어도 마땅한 인재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의 고민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그의 고민은 나의 고민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사관학교 관사에서 Dan과 나는 이웃으로 2년을 살았다. 나는 그가 키우는 심장병이 있는 러시안 블루 고양이와는 아주 어렵게 안면을 텄다. 거리에서 데려와 나이도 종도 정확하게 모르는 강아지와는 쉽게 친구가 되었다. 그가 새 차를 사고 일 주일도 채 되지 않은 어느 퇴근길에 사슴을 치었다. 사슴은 무사했지만 그의 마음은 다쳤다. 우리는 박살난 앞 범퍼를 함께 고치러 갔었다. 곧 그의 마음도 고쳐졌다. 그의 집에서 몇 번의 햄버거 파티를 했고, 매주 목요일 마다 체육관에서 농구를 했다. 동료의 죽음에 함께 애도했고, 돼지갈비에 매화수를 나눠마시다가 나만 술병이 나서 며칠을 앓았다. 나는 술자리에서 그에게 ‘앉은뱅이술’ 이라는 단어를 가르쳐 주었고, 확인해본 결과 그는 아직도 그 단어를 기억한다. Dan이 나에게 묻는다.

“잘 지내? 미국은 어때?”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거짓말이다. 사는 건 다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똑같은 삶이란, 수요미식회를 진행하면서 온갖 산해진미를 다 먹고 다니는 신동엽으로부터 질투를 느낄 필요가 없는 삶이다. 또는, 차로 10분 거리에 어디에나 먹을 만한 순대국밥 집이 있는 삶이다. 지금 이곳에서 순대국밥을 먹기위해서는 우선 밥을 얹히면서 쌀뜨물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마늘, 간장, 된장을 넣어 푹 삶은 목살을 냉장고에서 식혀 굳혀 머릿고기 느낌으로 얇게 썰어야한다. 고기 삶은 물에 쌀뜨물을 넣고 액젓으로 간을 하고, 마트에서 사온 Napa Cabbage와 Chive를 썰어 넣는다. 냉동순대도 구할 수는 있다. 봉투 채로 쪄서 썰어서 식힌다. 순대는 (가짜)머릿고기와 국물을 기다린다. 결국 순대국을 순대국 답게 만드는 것은 들깨가루다. 충분히 넣는다. 다대기를 만들어 종지에 담고, 밥을 푼다. 먹는다.

이번에는 내가 Dan에게 묻는다.

“잘 지내? 한국은 어때?”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거짓말이다. 사는 건 다 다르다. 우리는 서로의 거짓말을 눈 감아 줄 만큼 오랫동안 똑같은 삶을 함께 살았다. 다르게 사는 우리는 똑같은 거짓말을 한다.

그리움에는 이유가 없다.

나는 삶을 읽는다.

나는 삶을 읽는다. 공터 잡초들로, 막 알에서 깨어난 연회색 아기 거위들로, 유모차를 채우는 아기 웃음소리로, 농구코트 온통 땀방울로 가득한 계절. 말랑말랑한 것들이 세상을 메우는 동안에도 삶은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에 걸려있는 화살처럼 발사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죽음에 관한 글을 쓴다.   

회색 수염을 잔뜩 기른, 키가 190cm은 넘어 보이는 연사가 단에 올랐다. 불과 4주 전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동료의 공로상을 대리 수상하는 자리에서 불쑥 연사가 자신의 아들을 사고로 잃었을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많은 위로전화와 편지들을 받았고, 그의 경황을 묻고 걱정하는 사람들을 응대하면서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차츰 사람들의 연락이 줄어들 무렵 느지막이 동료가 찾아왔다. 오래 알고 지냈지만 집으로 그가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잘 여문 위스키가 한 순배 돌자 동료가 말했다. 자네 아들이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들으러 온 것이 아닐세. 자네 아들이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들으러 왔네. 연사의 아들은 철새 서식지 돌보는걸 좋아했다. 아들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그 때에도 샌프란시스코 연안 볼리나스 포인트를 따라 난 철새도래지에 머물렀다. 동료는 눈이 휘둥그래진 채로 의자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내 취미가 사실 철새 관찰이라네. 더 말해보게나. 그런데 연사는 그 순간 자기가 철새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잔에 위스키를 다시 채워 들고 계단을 올라, 사고 후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했던 아들의 방으로 갔다. 마치 잠시 여행을 떠난 것처럼, 방은 주인의 부재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생생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책상에는 읽다가 만 책이 펼쳐져 있고, 침대 맡에는 아무렇게나 벗어둔 후드티가, 문가에는 아들의 손 때가 묻은 기타가 널브러져있었다. 주인을 잃은 현재진행형의 방에 둘은 우두커니 서있었다. 동료가 책상의 책을 먼저 집어 들어 연사에게 건넸다. 대충 끼워 넣은 펜이 바닥에 떨어졌다. 낯은 익지만 굳이 이름까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던 새들의 사진이 펼쳐지고, 밑줄 치던 펜이 멈춘 자리, 불과 얼마 전 까지 아들의 손이 닿았던 자리에 그는 가만히 손을 얹어보았다. 밤이 깊어 동료는 떠나고, 연사는 아들 침대에 앉아 천천히 아들이 읽다 멈춘 자리부터 책을 읽어나갔다. 철새에 대한 책이 매우 흥미롭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몇 달 동안이나 연사는 동료와 자기는 잘 알지도 못하는 철새 서식지 얘기를 나누었다. 동료는 기꺼이 그의 말 동무가 되어주었다. 아들이 살아있었다면, 그리고 자신이 철새에 관심이 조금 더 일찍 생겼었다면 이 이야기를 아들과 나누었겠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들의 죽음보다는 아들의 삶에 대한 생각이 자라났다. 이제 철새 서식지에 대해 잘 아는 둘은 죽고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자신만 남았지만, 동료를 위한 자리에서, 동료가 자신의 아들을 위해 그랬듯이, 그의 죽음 대신 그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그를 기억하자는 말을 남기고 연사는 단에서 내려왔다.  

캄보디아의 해변에서 세상을 떠난 고등학교 시절 시 선생님을 추도하는 친구의 글을 본다. 친구가 글을 아주 잘 쓰는 덕에 시 선생님의 죽음을 전혀 모르는 나에게도 그의 삶만큼은 알 것만 같다. 그를 기억한다. 노동자의 날, 공사장 붕괴로 세상을 떠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사를 읽는다. 기사에는 삶이 없다. 죽음은 숫자로 남는다. 그들을 기억한다. 

죽은 이들의 삶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글 밖에 없다. 소외된 이들에게 동아줄을 내려주는 길도 글 만한 것이 없다. 나는 삶의 이야기들을 읽고, 죽음에 대한 글을 쓰고 밤도 낮도 너도 나도 구분 없이 흐른다. 강가에 흐드러진 풀잎들을 따서 강에 뿌려다오. 스틱스든 아케론이든 레테든 만나 같이 흐르다가 함께 바다에 닿을까 싶다. 

닮았다 해서 


아버지에 대하여 쓰고 싶은 저녁이다. 

아버지는 유머감각이 남다른 사람이다. 어머니께서 동창모임에 가신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온 내가 오늘 저녁 뭐 먹을까요 하고 여쭙자 아버지는 예의 그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자동차 핸들을 열심히 움직이는 시늉을 하셨다. 그래서 저녁이 뭔데요. 부엌에 카레 있어. 

부엌에 car racer.

부엌에 카레있어.

부엌에 car racer.

아버지는 유머 만큼이나 요리도 잘 하는 사람이다. 우리 집의 메인쉐프는 늘 어머니이지만, 아버지의 내공을 우리 형제는 안다. 김장할 때면 무도, 배추도 아버지가 오와 열을 맞춰 재단한다. 어머니는 양념 배합으로 김장을 지휘한다. 간은 두 분이 합의를 본다. 아무튼 아버지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다. 힘주어 두 번 말 할 필요가 있다. 어머니가 집을 비우면 아버지는 간장과 참기름과 고추장과 설탕에 잘 불린 떡국떡 만으로 만든 떡볶이나 냉동실 구석 다진돼지고기를 찾아내 큼직한 양파 조각과 달달 볶은 유니짜장밥으로 엄마의 빈자리를 채웠다. 배를 통통 두드리며 든든하게 잘 먹은 표정을 보이는 우리들을 마주하는, 늦저녁에 귀가하신 어머니의 표정에는 엷은 서운함이 배어나곤 했다. 카레 있어. 그러고보니 자주 아버지의 개그 소재로 이용당한 카레도 늘 당근과 감자가 달큰하게 익어 맛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걸음걸이 마저 닮아 어두운 건물 지하주차장에서는 나를 아버지로 오인한 어른들의 직각인사도 받아보았다. 머리를 잔뜩 길렀던 스무살 무렵을 제외하고는 어디를 가나 아버지랑 똑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마저도 아버지의 70년대 사진을 보니 장발의 부자는 과연 닮아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버지를 보고 자란 나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나이들어갈지를 이미 너무 잘 안다는 거다. 30대의 나는 이미 60대 후반의 나까지 미리 보며 자랐다. 

나는 겉모습 뿐만 아니라 내면도 아버지를 많이 닮아있음을 깨달았다. 새로운 음식에 덤벼드는 무모한 모험심, 좋은게 좋은 물렁한 성격, 서글서글하면서 은근히 낯을 가리는 소심함, 그리고 지나친 유머감각…까지. 나는 아버지의 황소고집, 지나친 이과적 계량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살면서 동종의 비난이 종종 나에게도 쏟아지는 것을 경험하고서는 아버지의 장단점을 고루 닮은 것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내 나이 이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어떤 과거와 어떤 현재와 어떤 미래를 보았을까. 아버지가 만들어준 떡볶이 여기 저기 묻혀가며 왁자지껄하던 유년시절이 떠오른다. 바닥에 흘린 고추가루 묻은 파 조각 하나가 어머니 눈에 들어 아버지는 우리를 배불리 먹이고도 핀잔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핀잔을 들으면 멋적은 미소를 짓는 것도, 흘리며 먹는 것도 나는 아버지를 닮았다.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면 -화장을 잘 안하고 다니시는 어머니- 검버섯 좌표들과 속 썩이는 아들 덕에 늘기만 하던 눈가주름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아버지는 거울 속에 있다. 밤기차 같은 기억을 타고 서른 무렵의 아버지를 만난다. 거울 속 아버지가 미소 짓는다. 

아버지의 떡볶이. 

아빠가 보고싶은 밤이다.

오늘은 섬이 아니다.


TABE(Test for Adult Basic Education) CLAS-E 시험 진행 및 채점을 위한 트레이닝을 받으러갔다. 회사는 이제야 비로소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듯하다. 불확실성은 그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못하는 듯하다. 미래에 집착하는 혼술남녀들에게도, 시험보다 과제를 선호하는 대학생들에게도, 내일 일은 모르는 내게도 그리고 네게도. 

자기소개를 했다. 짧게. 최대한 짧게. 는다 소개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자기소개를 해왔는지 기억도 안나는데 차례가 돌때면 늘 떨린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자기소개를 하게 될까. 얼마나 내 소개는 달라질까.

모처럼 출근도 안하고 학생이 된 기분을 만끽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만났다. 미래에 만나게 될 지는 모르지만, 만남이 늘 그렇듯 기약만 남긴다. 

만끽이 넘치는 하루인 마당에 끽연을 택했다. 끽해야 물담배지만. 테셐키ㄹ 에데ㄹㅁ (teşekkür ederim). 구글에서 찾은 터키어 감사인사 한마디에 주인 아주머니 얼굴에 함박웃음이 번진다. 12월 3일에는 Intercultural Awareness Training이 있다. 풍성한 겨울이 될 것 같다.

집으로 가는길에 고양이를 만났다. 잠깐 같이 사진도 찍고 쓰다듬어도 주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집에 가는 길은 다시 나 혼자였다. 뒤돌아보니 고양이도 혼자였다. 

나는 나만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은 넓디 넓어 서부나 남부로 부터 동부로 건너온 사람들은 나 만큼이나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규정하는 듯 하다. 섬처럼 부유하던 우리는 서로의 고독을 발견하고 기뻐한다. 낙엽들이 선처럼 누워 섬들을 이어준다.

고양이도, 나도, 보스턴이 낯선 서부의 멜라니도, 남부의 케이틀린도.

오늘은 그 누구도 섬이 아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집에 오는 길에 질 좋은 재료로 만든다는 빵집이 있길래 어머니 좋아하시는 우유식빵을 사왔다. 식빵을 앞에 놓고 함께 뜯으며 오늘 하루를 이야기 하고, 왓츠앱 메신저에 동영상 첨부하는 법을 알려드리고, 바오밥 열매의 효능을 알리는 티비를 함께 보았다. 어머니의 행복이 꼭 나의 행복은 아니고, 나의 행복이 꼭 어머니의 행복은 아니지만. 오늘은 필요충분적으로 행복한 저녁을 본다. 

내 미래는 나도 모르는데. 

지난 수요일 행여 자식이 미국에서 영영 살아버리진 않을까 요새 주유소 위치도 깜빡하는 70이 다되가는 아버지와 허리도 다리도 아픈 환갑의 자신을 너가 보면 얼마나 보겠니 나는 18살에 서울로 올라온 후로 제주도의 부모님과는 다시는 살지 못했다 내 마음으로는 못 보내지만 네 뜻이 정녕 미국에 남는거라면 이해하려고는 해볼게하며 잔뜩 불쌍한 표정을 짓던 어머니.  그날 마신 복분자주 때문에 요강이 아니라 속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어요 저는. 어머니.

근데 오늘 기분 좋아지셔서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1.8리터 생수 한박스를 한 손으로 들어 부엌으로 총총걸음 치시면 억울한 내 수요일의 꿀꿀한 밤은 누가 보상해주나.. 어머니가 거실에서 이케아 가구박스를 잔뜩 쌓아두고 스팟 조명 하나 의지해 낑낑 조립하는 그날 밤 악몽으로 잔뜩 우우우우울했던 내 목요일 아침은!!

건강하세요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것이부모의길 #그것이자식의길 #내게도사기꾼의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