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좀처럼 내 바람대로 불지 않는다.

바람은, 좀처럼 내 바람대로 불지 않는다.

NGO, NPO, 그리고 사회적 기업. 모두의 바람이 있다면 회사 본연의 공익적 취지는 살리면서 눈치보지 않고 운영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 걱정 없는 공익사업은 불가능하다. Non-profit에서 일하면서 얻은 깨달음 하나. 공익만 지나치게 강조하여 지원금에 의존하면 결국 경쟁력과 자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JVS-Boston의 주요업무 중 하나는 이민자와 난민들(clients)을 교육하여 회사에 취업시키는 일이다. 미국정부(Federal Funding), 주정부(State Funding), 시장직할 인력개발부서(Mayor’s Office of Workforce Development)에서 그리고 유태인계 재단인 CJP로부터 회사 운영비의 상당부분에 해당하는 지원금이 들어온다. 하지만 수 년간 회사의 규모를 키우면서 전체예산에서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줄이고, 서비스를 통한 매출비중을 높여오고 있다. 파트너쉽을 맺은 대기업들은 일부는 세금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부금의 형태로, 일부는 정당한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우리에게 지불한다.

우리가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들 중 파트너사(社)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분야는 다음과 같다.

– 난민과 이민자의 신원조회 및 범죄기록사실 확인

– 기본 비즈니스 영어와 문화 교육

– 컴퓨터, 접객, 약학보조, 간호보조, 은행업무보조 등 분야별 직업교육

– 기업의 필요에 따른 재교육, 맞춤형 보충교욱

– 기업현장에 영어교사 파견

교육NPO 로서 JVS-Boston의 특징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신원을 보증하고, 기본 교육과 보충교육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각각 파트너사의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파트너사들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익은 비용절감과 위기관리이다. 이 두 가지는 모든 회사들이 역점을 두는 부분이므로 공익이라는 명분은 거들 뿐, 파트너사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 준다. 점차 파트너사를 식품가공, 요식업, 유통을 넘어 의료, 금융 관련사로 확대하여 매출 증대를 꾀하고 있다.

매출 증대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영향받기 위한 무상지원금을 줄여 NPO로서의 자생력을 높이는 의의가 있고, 나아가서는 지원 주체가 간혹 꺼리는, 특정국가 난민문제, 성적 소수자 문제 등에 유연하고 자의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 더 큰 의의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회사 입장이고, 현장에서 내가 느끼는 안타까움들도 많다.

회사가 수익 사업에 역점을 두기 시작하면서 파이를 키운다는 명목 하에 클라이언트들의 적극적인 취업이 강조되었다. 일부 담당직원들(career coaches)에게 클라이언트들의 취업실적이 할당량처럼 부과되는 NPO답지 못한 일이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클라이언트들의 적성이나 커리어계획을 고려하기보다는 최단시간 내에 취업을 강요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게다가 회사가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들 중 취업관련성이 떨어지는 일반교육에는 배정되는 예산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회사의 덩치가 커진만큼 등잔 밑 그늘이 깊어졌다.

내가 직접 관여하고 있는 프로그램에도 피바람이 불 예정이다. 반(反)이민자 정책을 펴는 트럼프도 트럼프지만, 오바마대통령 임기 말 제정한 *WIOA가 가져온 여파다. 취지는 좋았으나… JVS-Boston의 인적 물적 자원이 취업교육에 집중되면서, 경제활동인구 범위 밖의 장년층, 그리고 사회보장번호가 없는 불법체류외국인들은 당장 법안이 발효되는 내년 하반기부터 우리 회사가 제공하는 교육 및 지원 서비스들을 받기가 어려워진다.

바람은, 좀처럼 내 바람대로 불지 않는다.

*WIOA (The Workforce Innovation and Opportunity Act) : 미국 노동부(DOL), 교육부(EL), 보건복지부(HHS)가 연대하여 지역 단위로 저소득계층에게 집중적인 취업교육을 제공하도록 하는 법안. 저소득층의 실업률과 사회보장기금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Advertisements

창은 좁고, 빛은 방문을 넘지 못했다.

창은 좁고, 빛은 방문을 넘지 못했다.

수능이 일주일 연기된 수험생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수능이 끝나도 삶은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지 않는다. 지겨운 입시만 끝나면 도장 찍듯이 꾹꾹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온전히 사는 날 보다 억지로 살아지는 날이 더 많다. 아둥바둥 사는 삶이 왜인가 생각해보니, 능력보다는 운 좋게 얻어걸린 기회들 때문은 아닌가 싶었다. 우울한 생각들은 나 자신이 토크니즘의 희생양-수혜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들게 만들었다. 소수자의 삶이란 그렇다. 차별 받으면 억울하고, 우대라도 받으면 차별을 은폐하기 위해 구색 맞추기용으로 추켜세우는 건 아닌가 불안하다. 자격지심과 자괴감을 떨쳐내다가 에너지를 허비하고, 일주일이, 때로는 한달이 뭉텅뭉텅. 시공간의 임의의 위치에서 사라지곤 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자동차 타이어 압력이 낮다는 경고가 떴다. 점검 예약을 위해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걸 요량으로 조용한 2층 빈 강의실로 무심코 들어섰다가 깜짝 놀라 뒷걸음치고 말았다. 창이 작아 빛도 간신히 구석에 자리를 잡는 어두운 방이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빛 정도 크기의 스카프를 바닥에 펼쳐 놓고, 무슬림 학생 하나가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바닥에 놓여진 스마트 폰 화면에는 메카를 향한 화살표가 빛나고 있었다. 그 화살표는 공교롭게 작은 창을 향해 있었다. 그 광경으로부터 묘한 편안함과 위태로움을 동시에 느낀 나는,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방에서 나왔다.

어쩌면 나는 평화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걸까. 창은 좁고, 빛은 방문을 넘지 못했다.

악인이 너무 많다.

악인이 너무 많다. 악인 소식지가 된 미디어를 매일 본다. 잠발라야에 들어간 익힌 소시지를 하나 베어 물면서 생각한다. 악인의 가장 추악한 면 중 하나는 무지의 활용인데, 다음의 화법을 돌려가며 쓴다. “그건 몰라도 돼.” “모르면 가만히 있어” “몰랐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모르게 하려 하고 모른다고 하고 모르려고 한다. 많은 악인들이 꿰찬 자리들은 무지로 죄를 모면하기에는 너무 책임이 큰 자리라서, 무지도. 악이다. 아니, 무지야말로 최악이다. 무지하다면 그 자리에 있지 말았어야지. 공감의 결여는 더 최악이다. 무감각하다면 그 자리에 있지 말았어야지. 악인이 너무 많다. 고국에도 잠발라야를 입에 털어 넣고 있는 이곳에도.

레스토랑 주방에서 샐러드를 만드는 일은 하는 R이 자신이 요새 레스토랑에서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고민을 털어 놓았다. 그녀는 내게 자신이 잘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R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재차 이야기 해준다. 악인이 너무 많다.

  1. 월요일, 수요일은 오후 9시반까지가 정해진 근무시간인데 종종 손님이 없이 한가한 날은 9시만 되어도 집에 가라고 일찍 보내는 경우. 게다가 일찍 보낸 30분에 해당하는 임금은 지급하지 않았다.
  2. 목요일 오후 10시까지가 정해진 근무시간인데 손님이 많아 바쁜 날은 11시까지 근무하게 하고는 시급의 50%에 해당하는 법정초과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경우. 사장은 R에게 일찍 집으로 보낸 날과 시간을 맞바꾼 셈 치란다.
  3. 눈 폭풍이 몰아쳤던 지난 토요일, 근무시간에 식당에 도착하니 다시 집에 가라고 했다고 한다. 오늘은 출근하지 말라고 음성 메시지 남겼는데 몰랐느냐면서.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폭설로 손님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사장과 매니저와 매니저 딸이 일을 하고 있었다. 가게는 닫지 않았는데 왜 출근하지 말라는 걸까. 이렇게 저렇게 일할 시간이 줄면 나갈 돈은 일정한데 들어오는 돈이 준다. 곤란하다.
  4. R의 설명에 의하면 매니저는 감정의 기복이 심해 오후 5시에 나긋나긋하다가도 오후 7시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부리는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했다. 사장은 매니저에게 인사관리부터 매장 운영까지 전권을 위임한 상태였는데, 매니저는 이른바 비선실세였다. 매니저의 딸이랑 다툼이 있었던 웨이트리스가 뺨까지 맞고 직장을 그만둔 적도 있었다고 했다. 매니저 눈 밖에 난 직원 여럿이 이미 그만 두었다고 했다. 심성이 온화하고 겁이 많은 R은 항상 매니저만 만나면 벌써 심장이 벌렁벌렁해서 가급적 피해 다닌 다고 했다.

“Equality means dignity. And dignity demands a job and a paycheck that lasts through the week” – Martin Luther King Jr.

미국의 노동법은 고용주로 하여금 연방법과 주정부법을 동시에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연방법에 의거한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 메사추세츠주의 최저 임금은 $11 (2017년 1월 1일부터 적용). 따라서 보스턴의 고용주들은 시간당 $11 달러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이 밖에도 근무시간 변동과 보상에 대한 세부조항은 정부와 주 간에 차이가 있다. 따라서 고용주들은 피고용인들에게 그들의 업무와 더불어, 권리에 대하여 설명할 의무가 있다. (일정규모 이상의 사업장은 고용내규 핸드북을 제공한다.) R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려면 일단 그 핸드북을 함께 살펴 볼 필요가 있었다.

삶이 내게 내민 지혜 하나는, 문제 해결에 어줍잖은 지식을 뽐내기 이전에 해결에 도움이 될 전문가를 찾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도서관에는 나와 함께 파견 나온 사회복지사 M이 있다. 라즈베리 초콜릿 케잌을 기가 막히게 굽는 M은 대기업 인사과에서 오래 일하다 작년에 은퇴하고 우리 팀에 합류했다. M에게 R을 데려갔다. R은 M을 만나러 가는 길에 나를 붙잡고 신신당부한다. 매니저한테 자기가 이런 이야기를 남에게 했다는 사실이 들어가면 자기는 직장을 잃을 거라고. 그러면 큰일이라며. 직장에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말아달라고. 일단 M에게 우리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물어본 후에 어떤 조치를 취할 테니 걱정 말라고 R을 안심시켜본다.

M을 만나 R은 서툰 영어로 다시 그 간의 일들을 설명했다. 그러다 감정에 복 받쳤는지 아니면 어쩌면 억울해서 또는 불안해서인지 이내 R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M은 따뜻한 말투로, 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위에 나열한 R의 문제들은 영세 사업장에서는 관행처럼 이루어지는 일이며, 시간제 레스토랑 노동자. 조합도 없는 비정규직 개인의 권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부당함에 대한 증명과 보상을 위해 긴 시간 싸워야 할 수도 있고. 싸움 뒤에는 상처뿐인 영광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나와 M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싸우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R, 네가 틀린 것은 아니라고. 틀린 것은 그들이며 네가 권리를 찾고자 그들과 맞선다면 너와 함께 하겠노라고. 그렇게 호기롭게 R에게 이야기 했지만, 현실적인 고민에 대한 우리의 현실적인 해결책은 사실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아아, 악인과 싸우기 위해 죄 없이 성실한 사람들이 감수 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민 후 첫 직장을 구할 때는 힘들었다지만 이미 2년이나 일한 경력이 있는 R에게 이직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부당한 대우를 당하며 불안해하며 다닐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이 R에게는 와 닿지 않는 모양이다. 더 나은 직장이다 하더라도. 새 직장을 찾고, 교통수단을 알아보고, 새 사람과 일에 적응하는 일련의 불확실한 모험들이 R에게는 부당하지만 확실한 현실보다 더 두려워 보인다. 일단 ‘시험 삼아’ 라도 좋으니 한 번 보자고 R에게는 새 일자리를 알아봐주기로 하고 마음에 드는 새 직장이 구해질 때까지는 지금 직장에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기로 했다.

함께 도서관을 나서면서 힘없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R은 두 개의 납작해진 초코맛 시리얼바를 내게 내민다. 자기는 오늘 이미 네 개나 먹어서 물린다며 내 잠바 주머니에 기어코 쑤셔 넣고는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손을 흔들며 먼저 저만치 걸어간다. 그날 집에 오는 길에 먹은 초코 시리얼바는 유난히 달아서 씁쓸한 나머지 나는 연신 물을 들이켰다. 그래도 쓴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어떡해야 하나. 무력감이 내성발톱처럼 속마음을 파고들 때는.

 

온기

교회가 불에 탔다. Veteran’s Day를 끼고 연휴였던 지난 토요일 새벽, 교회 사목실 외벽에서 시작된 불은 유리를 깨고 천장일부에 피해를 입혔다. 다행히 이웃의 신고로 불은 금새 진압되었다지만 지하로 번진 불은 보일러를 완전히 태웠다. 화마는 겉보기에는 멀쩡한 교회 곳곳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입혔다. 창문과 문을 모두 열어두었지만 교회 내부에는 탄내가 진동했다. 학생들은 오들오들 떨면서 흩어져 앉아있다가 나를 반겼다. 모국도, 여기 미국도 모두 하수상한데. 평안한 날이 없구나. 학생들이 주섬주섬 나를 빙 둘러싼다. 쨍한 하늘, 바람은 유난히 매섭다.

내가 파견되어 일하는 하이드 파크는 보스턴 근교 가난한 도시다. 이름이 말해주듯 19세기 초 영국 이민자들이 런던처럼 꾸미고자 하는 마음에 Hyde Park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도시의 출발은 풍요로웠다. 너도 나도 교회도 짓고 상점도 지어 마을을 키웠다. 하지만 보스턴 시내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돈 있는 사람들은 낡은 교외 집을 떠나기 시작했다. 낡은 집은 월세가 저렴하다. 보스턴 시내에서 차로 20여분 남짓. 이 도시의 집세는 보스턴의 절반가량이다. 150여년의 시간동안 도시는 흥망성쇠를 겪으며 도시 인구의 85%가 유색인종인 이민자들의 도시가 되었다.

부유한 공동체는 풍족하게 서로 선을 긋고, 가난한 공동체는 공간도 물자도 인력도 서로 나누고 공유한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남는다. 계속 살아간다.

오피스가 있는 도서관 만으로는 강의실이 부족해서 월, 목 오후는 길 건너 교회 부속실을 강의실로 사용한다. 처음에는 Christ Church로 지어졌으나 지금은 Iglesia de San Juan으로 불린다. 무려 1860년에 지어진 교회는 곳곳에 세월의 흔적을 피할 수 없지만 제법 관리가 잘 되어있다. 교회관리인 Fabio는 작고 단단한 체구에 늘 멋들어진 콧수염을 기르고 있다. 한번은 나에게 한국인 친구가 있었노라며 낡은 지갑 하고도 매우 안쪽 메모지 뭉치에서 한자로 쓰여진 이름과 세월에 뭉개진 번호를 보여주었다. 아무리 읽어봐도 중국사람 같은데.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어색하게 웃어 넘겼다. 눙치는 재주가 뛰어난 그는 늘 이런저런 교회 행사에 나를 초대하지만 한 번도 가지못했다. 사실 주말에는 한 번도 Hyde Park에 가본 적이 없다. 

불이 난 주말은 공교롭게도 도널드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였다. 음모론은 언제나 흥미롭지만, 내 주변 일에 음모론을 적용하는 일은 끔찍하다. 첫눈이 오려니 추위가 먼저왔다. “공식적인” 화재의 원인은 이랬다. 술취한 노인이 몸을 녹이려 교회 뒤편 이동식 화장실 안에서 불을 피운 것이 그만 불길이 커져 교회로 옮겨붙은 사고로 경찰들은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그렇다면 쇠지레로 들어올려진 뒷문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돌덩이는? 의심을 멈추기로 했다. 학생들의 동요를 막기위해 증오범죄 만큼은 연관짓지 않으려 한다. 행여 관련없다 하더라도 이제 이런 일이 생기면 반사적으로 증오범죄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되었다니. 트럼프가 그려가는 세상에서 내 이성은 자꾸 부정적인 테두리로 내몰린다. 

첫 눈이 왔던 날을 한 해가 지나 날짜 그대로 기억하기는 어렵다. 작년에는 조금 이른 10월 말쯤, 재 작년에는 올해와 비슷하게 혹은 좀 더 늦은 11월 말 쯤 이었던 듯 싶다. 그 전 첫 눈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년에는 올해의 첫 눈을 기억할까.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안아 보냈다. Thanksgiving 연휴에도 학생들 대부분은 일터로 향한다. 휴가를 떠난 누군가를 대신해 이들이 일한다. 오버타임이니까 1.5배 받아요! 신난다!라니. 행여 도시 어딘가에서 이들을 마주친다면 나는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라디오에는 트럼프 당선자의 행보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흘러 나온다. 한국의 포탈은 성난 민심으로 들끓는다. 나는 주말에 Hyde Park도 광화문에도 가지 못했다. 

무슨일이 일어난 후에야 사람들은 그 시간 그 날짜 그 순간의 공기를 기억한다. 나머지 별 일없는 시간들은 그저 흘러갈 뿐이다. 흘러간 시간들은 무의미 한걸까. 한국의 우리는 올해의 촛불들을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할까. 침묵했던 시간들은 잊혀지겠지. 광화문 촘촘하게 모여든 사람들의 온기를 기억하자.

불에 탄 교회는 다음주에 다시 문을 연다. 기억난다. 학생들이 주섬주섬 나를 빙 둘러싼다. 온기. 새 보일러보다 따뜻한 사람의 온기. 어쩌면 겨울은 온기를 느끼기위해 존재하는 계절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딘가 모를 온기가 느껴진다. 

It’s a sister thing.

“저는 제 여동생이 집을 떠나서 혼자 살게 되면 자살할까 겁이나요.”

지금은 이름도 존재도 없다고 했다. 소련이 붕괴하면서 타국으로 병합된 나라에서 온 자매가 있다. V와 M은 자신들의 나라가 개정판 지도에서 사라질 무렵 미국으로 건너왔다. V와 V의 아들, 그리고 M은 한 집에서 살았다. 고맙게도 V와 M은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왕복 세 시간 거리의 Medford에서 부터 Hyde Park의 강의실까지 거의 늦는 법 없이 찾아왔다. 둘은 자매인데도 참 달랐다. V는 해장국으로는 우족탕이 최고이며, 담배도 몸이 원하면 가끔 펴 줘야 정신건강에 이롭다며 호탕하게 웃곤 했고, 어딘가 어두운 듯 수줍음이 많은 M은 미안할 일이 아닌데도 늘 습관처럼 “I’m sorry”로 말문을 떼곤 했다.

어느 날 부터인가 M은 V로부터 멀리 떨어져 앉기 시작했다. 워낙 다정한 자매였기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종종 영어가 좀더 능숙한 V가 M에게 러시아어로 M의 이해가 부족한 부분을 설명해주기도 하였기에 그들의 친밀한 관계가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둘은 말조차 섞지 않았다.

휴가를 떠난 누군가의 일을 대신하기위해 M이 수업에 빠진 수요일 오후, 강의실을 빠져 나가는 V를 붙잡고 조심스럽게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V는 M이 요새 부쩍 독립하고 싶어했고 이를 말리다가 다툼이 커져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V는 그 해 대학입시를 앞둔 아들을 둔 엄마였고, M의 가족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V와 M, 둘 다 50이 가까운 나이인걸 알기에, 나는 V에게 M이야 어른이고 일도 시작해 수입도 있으니 그녀가 정 그리 원하면 그렇게 하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V는 한숨을 쉬면 내게 말했다.

“저는 제 여동생이 집을 떠나서 혼자 살게 되면 자살할까 겁이나요.”

M이 종종 쓸쓸한 표정으로 어두운 창 밖을 바라보던 모습이 생각났다. V에게 왜 M이 그럴까봐 걱정되냐고 재차 묻자. 망설임 끝에 V는 M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M의 남편은 군인이었다. 당의 신임을 얻어 수입도 좋고 진급의 기회도 탄탄한 재원이었다고 했다. M의 남편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했고, M은 그런 남편을 자랑스러워 했다. 둘 사이에는 열살바기 아들도 하나 있었다. 자신도 크면 아빠같은 군인이 되겠다고 그리고 엄마를 지켜주겠다며 아빠의 걸음걸이를 흉내내던 사랑스런 아들이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에 소련이 와해되고, 짧은 독립의 시기를 거쳐 내전이 일어났다. M의 남편은 선택을 강요 받았다. 어느 선택에도 손에는 총이 쥐어지는 자리에 있었다. M은 그때 남편을 설득하여 몰락해가는 나라를 떠나지 못한 것을 아직도 후회한다고 했다. 남편은 곧 돌아올게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내전이 끝날 즈음에는 남편의 죽음에 책임을 질, 그 어떤 명분을 가진 자도 남아있지 않았다. 남편의 죽음을 책임질 국가 마저 남아 있지 않았다.

“He died for nothing.”

분노한 V가 깨문 아랫입술 사이로 두 번 이 말이 새어 나왔다. 여기까지 듣고나니 V가 이야기를 그만 멈췄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V가 영어를 이렇게 잘 했었나. 그녀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내가 들여다본 어둠 아래에서는 더 깊은 어둠이 나를 올려다 보고 있음을 직감했다.

남편을 잃은 M은 아들 하나 바라보며 살았다. 하지만 아들에게 아빠의 죽음은 세상이 산산조각나는 것과도 같았다. M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들을 데리고 V의 가족에게 의탁하는 것뿐이었다. M은 돈을 벌기 위해 억척스럽게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휴식은 상상력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망상과 고통을 불러들일 뿐이었다. 말로는 V에게 신세지기 싫었다고 했다. 가족들 간에는 종종 고마움과 자존심이 뒤섞인 바보같은 감정들이 들 때가있다. 아들의 미래도 마음의 짐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전쟁 후 파탄난 경제체제 안에서 돈벌이 기회는 많지 않았다. 하루 종일 일감을 찾아 밖을 떠돌다 집에 돌아온 M은 V에게, 그리고 아들에게 늘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고 했다. 남편을 설득해서 도망치지 못해서 미안하고, 남편은 군인으로서 자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을지 몰라도, 남편의 죽음은 생각도 못한채 자랑스럽게 손을 흔들던 자신이 부끄럽고 원망스러워서 미칠것 같다며 V의 품에 안겨 매일 울었다고 했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부엌 옆 작은 방에서 M의 아들이 돌아눕는 소리가 났다.

M은 아들을 볼 때마다 남편 생각이 나서 우는 표정이 되곤 했다. M의 아들은 좀처럼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다만 말 수가 부쩍 줄었다. M의 아들은 V의 아들과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V의 남편과는 유독 데면데면 했다. V의 남편은 아빠를 잃은 M의 아들을 자식처럼 아껴주었지만, 그럴 수록 M의 아들은 어깨를 빼며 더 어두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사람들의 슬픔과는 별개로 시간은 매정하게 흐른다. M의 아들은 말 수가 더 없어졌지만, 학교도 다니고 집에도 꼬박꼬박 제 시간에 들어오고 괜찮아 보였다. 괜찮지 않은 사람이 괜찮아 보이고, 괜찮은 사람이 종종 괜찮지 않아 보이는 경우가 있다. M의 아들이 그랬다. 사실 줄곧 괜찮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16세가 되던 여름, 아버지의 기일을 1주일 앞두고 M의 아들은 방에서 목을 맸다고 했다. M의 아들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어떤 절망이 그 어린 영혼을 세상의 끝으로 내몰았을까. M은 그 답을 구하지 못한 채 한동안 반쯤 실성한 채로 살았다고 했다. V는 그때쯤 이민을 결심했다. 갑작스런 결심은 아니었다. 미국에는 먼저 자리잡고 살고 있는 배다른 여자형제가 있었다. V는 아들의 미래가 늘 걱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무엇보다 M의 상태가 걱정이었다. 서둘러 짐을 챙겼다. V의 남편은 남아서 돈을 벌다가 기회가 있으면 미국으로 건너가기로 했다. M은 캄캄한 어둠뿐인 창 밖만 보며 한 숨도 자지 않고 미국 땅에 도착했다.

V는 남편이 보내주는 돈으로 근근이 살림을 꾸려나갔다. 작지만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아파트도 얻었고, 아들도 공립학교에 나가기 시작했다. M도 대형 체인 레스토랑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가다가 매니저가 M을 찾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밤 낮으로 매일 일했다. M은 휴가도 여가도 모른 채 일만 했다. 큰 액수는 아니어도 쓰지 않고 벌기만 하니 제법 돈이 모였다. 몇 년이 지나자 M은 독립을 결심했다. 그리고 자신의 뜻을 V에게 밝혔다. V는 M에게 독립은 안 된다고 했지만, 왜 안 되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M은 그 이유를 알았지만 V에게 왜 안 되냐고 재차 물었다.

M은 V에게 이제 제발 그만 미안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M은 모든 것이 미안하다고 했다. M은 언제나 미안하다고 했다. 수 많은 미결(未決)의 미안함 중에서 자기가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찾았다고 말했다. 언니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 V의 화목한 가정, 성공한 남편, 대학에 합격한 아들, M은 V의 모든 것을 마음 다해 축하를 해주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상실감이 엄습했으리라. V는 M의 마음을 헤아려 조심조심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V는 재차 자신은 그래도 M을 보내줄 수 없다고 했다. 가족을 잃은 것은 V도 마찬가지다. 제부와 조카를 차례로 잃었다. V도 자신을 자책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여동생마저 잃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V의 의지는 결연했다. V는 내게 말했다.

“It’s a sister thing. We need time.”

V에게 조언을 하거나, M의 슬픔을 가늠할 혹은 동정할 자격은 내게 없다. 그저 가슴이 미어지는 이야기에 할 말을 잃었을 뿐 이었다. M의 슬픔은 그녀의 것이다. V의 고집은 정당한 것이다. 나는 M의 슬픔을 들은 대가로 M을 마주할 때마다 M의 슬픔을 짐짓 모르는 듯 연기를 해야 했다. 둘의 어색한 사이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야 했다. V와 M, 둘의 줄다리기는 팽팽했다.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서로를 강렬하게 끌어 당겼다.

M은 오늘도 인사처럼 I’m sorry로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매일 각자의 괜찮지 않은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It’s Okay. 괜찮아요. 말하며 살고 있다. 무기력한 나는 괜찮지가 않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감추고 있는 것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바라건데 M이 늘 바라만 보던 어둠 안에서 빛을 보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