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ing

age_of_adaline_poster

흰머리가 생겼다. 노화가 찾아왔다. 찾아왔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노화는 항상 진행중에 있었으므로. 나 스스로 변화를 관찰할 지표가 하나 더 생겼을 뿐이다라고 애써 의연하려 하는 중이다.

“The Age of Adaline” 라는 영화를 보았다. IMDB 평점 7.2 에 Rotten Tomato 지수54%. 수치상으로는 무난한 영화라는 뜻이다. 할리우드 서사공식을 따르고 대중에게 어느정도 성공적으로 영합했다는. 이디스 워튼의 “The Age of Innocence”를 변주하여 중의적으로 지은 영어제목은 애덜라인의 시대, 혹은 애덜라인의 나이로 해석될 수 있겠다. 국내개봉 제목은 줄거리를 그대로 담은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 네이버 평점은 7.7. Blake Lively가 주연을 맡았다. 정제된 톤과 고풍스러운 의상. 그녀의 대표작인 미드 “Gossip Girl” 보다 훨씬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Aging에 대한 다른 시각으로의 고찰은 젊은 육체가 숭상받는 할리우드에서도 그렇게 새로운 주제는 아니다. 피츠제럴드의 단편을 원작으로하는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이라던가 니페니거 원작의 “The Time Traveler’s Wife”등의 영화에서 이미 다룬 바가 있었다. 완성도도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The Age of Adaline”의 Adaline은 벼락을 동반한 교통사고로 생체시계가 멈춰 젊은 모습 그대로 영생을 살아가는 축복(?)을 누린다. 모두가 갈망하는 영원한 젊음이 저주가 되는 지점은 Adaline이 키우는 강아지들이 몇 대를 거쳐 노화로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고, 결정적으로는 수 십 년 째 30대의 외모를 자랑하는Adaline과 이제 70을 바라보는 그녀의 딸이 식사를 하다가, 딸이 스스로 몸을 돌보는데 힘에 부쳐 이제 양로원에 들어가고 싶다고 Adaline에게 고백하는 장면에서이다. Adaline은 자신이 가진 불노(불사는 아니다)의 비밀을 쫓는 FBI를 피해 일정 기간마다 흔적을 지우고 이름을 바꾸면서 새 삶을 만들어간다. 그녀가 틈틈히 텅빈 창문을 응시하며 내쉬는 한숨은, 영원히 젊지만 정체성은 희석되고, 사랑은 유통기한이 짧고, 영혼은 외롭게 부유하는 무한한 삶의  궁극적 무의미를 보여준다.. 결국 그녀는 우연한 기회로 다시 생체시계의 멈춤 버튼을 해제하는 데 성공한다. 새로운 사랑과 파티장에 가려고 분주히 준비하는 저녁, 거울을 보다 굳은 듯 멈춰선다. 흰머리.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머리에서 흰머리를 발견하며 미소짓는다.  Adaline의 영원한 젊음은 모두가 바라는 Anti-Aging에 대한 역설이다. 그녀는 기쁘게 well-dying의 세계로 재 진입한 자신의 육체를 받아들인다.

지난 달 미국의 패션 잡지 Allure는 Anti-Aging이라는 단어를 자사의 매체에서 금지시키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은 Aging은 반드시 반(反)해야하는 것인가에 대한 재고에서 시작되었다. 여성들을 지나치게 대상화하는 사회에서, 그동안 주름이라던가 기미나 검버섯은 싸워 없애야할 노화의 적이었으며, 보톡스와 필러가 anti-aging의 가장 큰 수혜자였다. 그렇다면 이제 주름제거와 미백등 노화방지 기능이 추가된 화장품을 어떻게 부르는가하면 브랜드 별로 Pro-Age (Dove), Age-Defying (Olay), Age Perfect (L’Oreal) and Slow Age (Vichy) 등으로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의미를 담고자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Aging이라는 용어가 덕을 보는 분야도 있다. 고가의 주류와 숙성 소고기 시장이다. 와인과 위스키는 오크통 안에서, 소고기는 때로는 wet 하게도 아니면 dry하게도 Aging하며 몸값을 불린다. 지금은 부상으로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지만 스페인과 이탈리아 리그를 거쳐 프랑스 리그까지 평정한 후, 최전방 공격수로는 은퇴시기를 한참 지난 37세의 나이에 EPL 데뷔를 앞두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스스로를 와인에 비유하며 말했다. “자신은 와인과 같아서 나이가 더 들 수록 더 강력해진다” 라고. 그리고 자신의 호언장담을 실력으로 증명해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시간의 풍파를 담은 얼굴의 점과 선들이 훈장인지 아니면 싸워 이겨 없애할 대상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젊은 시절 당대를 호령하던 한 러시아 여배우는 70대가 되어 자신을 찍는 사진작가에게 절대 포토샵을 하지 말고 원본 그대로 사진을 실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 가득한 주름 그대로 미소를 띈 채 사진작가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제 주름을 지우지 말아주세요. 이 사랑스러운 것들을 얻는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요.”

Advertisements

서태지

문득 서태지를 듣고 싶은 아침이었다. 차에 타서 시동을 걸었는데 “서태지!” 하고 누가 귀에다 외친 것처럼. 벅스로 서태지 전곡 싹 긁어서 틀어놓고 며칠 출퇴근을 했다.

1992년 봄, 아버지가 퇴근하시면서 카세트 테잎 하나를 내게 휙 건네셨다. “고놈 음악 요망지다. 뜰 것 같아.” 이제는 내일 모레 70을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음악 일을 하시는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계셨다. 90년대에 음악기획사도 잠시 하다 접으셨는데. 아쉽다. 그 안목. 아버지는 지금도 취미가 뮤직비디오 감상이다. 몇 년에 한 번 집에 돌아가면 아버지가 컴퓨터 앞에 앉아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미간 주름으로 보고 계시는 모습을 맞닥뜨리게 된다.

아무튼,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는 특종 TV 연예 첫 회에 이루어졌는데. ‘신곡 무대’ 라고 신인가수의 곡을 작곡가, 작사가, 그리고 선배가수가 들어보고 신인가수에게 평점과 함께 조언을 해주는 코너였다. 지금도 레전드 영상으로 남아 있는데, 서태지는 7.8의 평점과 멜로디 라인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리고 나서 비웃기라도 하듯 각종 지상파 음악프로들에서 17주 연속 1위를 해버린다.

지금의 서태지를 만든 곡은 ‘난 알아요’이지만 나는 1집 앨범을 고루 좋아했다. 특히 ‘이제는’ 이라는 곡을 좋아했었는데. 지금 들으면 촌스럽다. 하지만 2008년 ETP Festival에서 15년 만에 ‘이제는’의 Remake 버전을 발표하는데, 최근에 '응답하라 1994' 수록곡으로 유명해진 ‘너에게’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오글거리는 나레이션만 넘기면 어렸을 때 좋아했던 곡을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즐겨 들을 수 있게 되어 고맙다.

내 고마움과는 별개로 20세기의 서태지는 21세기에 들어 숱한 삶의 고난과 마주하는데, 인터넷의발달로 밝혀진 서태지의 초기 곡들에 대한 표절 논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이혼(결혼 소식 전에 이혼 소식을 먼저 들음 )과 재혼(결혼-이혼-재혼 소식을 동시에 들음)으로 그의 신비주의를 겸한 잠적은 극에 달한다.

그 후에 발매된 2014년 Quiet Night 앨범을 들어보았다. 그나마 최신 앨범이라 생각만큼 많이 들어보지 않아 몇 곡들은 새로웠다. 원래도 서태지가 미디를 많이 쌓아 올려 곡을 만드는데, 여전히 고가의 미디 장비들로 만든 곡들이라 Flac 파일도 아닌데 웬만한 뮤직플레이어들로는 감당을 못하는 느낌. 키덜트 서태지가 자택에 틀어박혀 애니메이션 보고, 게임 하고, 미드 보고, 아직도 세계 7대 미스터리를 궁금해하고, 할로윈과 크리스마스에 설레하는 등의 자신이 즐기는 것을 앨범에 마구 담은 느낌.

나는 음악가와 음악을 동일시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타이틀곡 소격동을 부르는 서태지는 내가 좋아하는 서태지다. 서태지가 유년시절을 보낸 소격동은 5공시절 기무사 자리로 민간 사찰 및 청년들의 강제징집이 이루어진 곳이다. 늘 사회비판적인 음악을 발표하는 그가 건재를 과시하듯 자신의 장난감처럼 만든 앨범 가운데에 진지하고 꽉 찬 한 방을 준비해 두어 고맙다.

오늘은 하루종일 서태지를 듣는다.

 

나는 삶을 읽는다.

나는 삶을 읽는다. 공터 잡초들로, 막 알에서 깨어난 연회색 아기 거위들로, 유모차를 채우는 아기 웃음소리로, 농구코트 온통 땀방울로 가득한 계절. 말랑말랑한 것들이 세상을 메우는 동안에도 삶은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에 걸려있는 화살처럼 발사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죽음에 관한 글을 쓴다.   

회색 수염을 잔뜩 기른, 키가 190cm은 넘어 보이는 연사가 단에 올랐다. 불과 4주 전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동료의 공로상을 대리 수상하는 자리에서 불쑥 연사가 자신의 아들을 사고로 잃었을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많은 위로전화와 편지들을 받았고, 그의 경황을 묻고 걱정하는 사람들을 응대하면서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차츰 사람들의 연락이 줄어들 무렵 느지막이 동료가 찾아왔다. 오래 알고 지냈지만 집으로 그가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잘 여문 위스키가 한 순배 돌자 동료가 말했다. 자네 아들이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들으러 온 것이 아닐세. 자네 아들이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들으러 왔네. 연사의 아들은 철새 서식지 돌보는걸 좋아했다. 아들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그 때에도 샌프란시스코 연안 볼리나스 포인트를 따라 난 철새도래지에 머물렀다. 동료는 눈이 휘둥그래진 채로 의자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내 취미가 사실 철새 관찰이라네. 더 말해보게나. 그런데 연사는 그 순간 자기가 철새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잔에 위스키를 다시 채워 들고 계단을 올라, 사고 후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했던 아들의 방으로 갔다. 마치 잠시 여행을 떠난 것처럼, 방은 주인의 부재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생생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책상에는 읽다가 만 책이 펼쳐져 있고, 침대 맡에는 아무렇게나 벗어둔 후드티가, 문가에는 아들의 손 때가 묻은 기타가 널브러져있었다. 주인을 잃은 현재진행형의 방에 둘은 우두커니 서있었다. 동료가 책상의 책을 먼저 집어 들어 연사에게 건넸다. 대충 끼워 넣은 펜이 바닥에 떨어졌다. 낯은 익지만 굳이 이름까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던 새들의 사진이 펼쳐지고, 밑줄 치던 펜이 멈춘 자리, 불과 얼마 전 까지 아들의 손이 닿았던 자리에 그는 가만히 손을 얹어보았다. 밤이 깊어 동료는 떠나고, 연사는 아들 침대에 앉아 천천히 아들이 읽다 멈춘 자리부터 책을 읽어나갔다. 철새에 대한 책이 매우 흥미롭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몇 달 동안이나 연사는 동료와 자기는 잘 알지도 못하는 철새 서식지 얘기를 나누었다. 동료는 기꺼이 그의 말 동무가 되어주었다. 아들이 살아있었다면, 그리고 자신이 철새에 관심이 조금 더 일찍 생겼었다면 이 이야기를 아들과 나누었겠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들의 죽음보다는 아들의 삶에 대한 생각이 자라났다. 이제 철새 서식지에 대해 잘 아는 둘은 죽고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자신만 남았지만, 동료를 위한 자리에서, 동료가 자신의 아들을 위해 그랬듯이, 그의 죽음 대신 그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그를 기억하자는 말을 남기고 연사는 단에서 내려왔다.  

캄보디아의 해변에서 세상을 떠난 고등학교 시절 시 선생님을 추도하는 친구의 글을 본다. 친구가 글을 아주 잘 쓰는 덕에 시 선생님의 죽음을 전혀 모르는 나에게도 그의 삶만큼은 알 것만 같다. 그를 기억한다. 노동자의 날, 공사장 붕괴로 세상을 떠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사를 읽는다. 기사에는 삶이 없다. 죽음은 숫자로 남는다. 그들을 기억한다. 

죽은 이들의 삶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글 밖에 없다. 소외된 이들에게 동아줄을 내려주는 길도 글 만한 것이 없다. 나는 삶의 이야기들을 읽고, 죽음에 대한 글을 쓰고 밤도 낮도 너도 나도 구분 없이 흐른다. 강가에 흐드러진 풀잎들을 따서 강에 뿌려다오. 스틱스든 아케론이든 레테든 만나 같이 흐르다가 함께 바다에 닿을까 싶다. 

악인이 너무 많다.

악인이 너무 많다. 악인 소식지가 된 미디어를 매일 본다. 잠발라야에 들어간 익힌 소시지를 하나 베어 물면서 생각한다. 악인의 가장 추악한 면 중 하나는 무지의 활용인데, 다음의 화법을 돌려가며 쓴다. “그건 몰라도 돼.” “모르면 가만히 있어” “몰랐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모르게 하려 하고 모른다고 하고 모르려고 한다. 많은 악인들이 꿰찬 자리들은 무지로 죄를 모면하기에는 너무 책임이 큰 자리라서, 무지도. 악이다. 아니, 무지야말로 최악이다. 무지하다면 그 자리에 있지 말았어야지. 공감의 결여는 더 최악이다. 무감각하다면 그 자리에 있지 말았어야지. 악인이 너무 많다. 고국에도 잠발라야를 입에 털어 넣고 있는 이곳에도.

레스토랑 주방에서 샐러드를 만드는 일은 하는 R이 자신이 요새 레스토랑에서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고민을 털어 놓았다. 그녀는 내게 자신이 잘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R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재차 이야기 해준다. 악인이 너무 많다.

  1. 월요일, 수요일은 오후 9시반까지가 정해진 근무시간인데 종종 손님이 없이 한가한 날은 9시만 되어도 집에 가라고 일찍 보내는 경우. 게다가 일찍 보낸 30분에 해당하는 임금은 지급하지 않았다.
  2. 목요일 오후 10시까지가 정해진 근무시간인데 손님이 많아 바쁜 날은 11시까지 근무하게 하고는 시급의 50%에 해당하는 법정초과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경우. 사장은 R에게 일찍 집으로 보낸 날과 시간을 맞바꾼 셈 치란다.
  3. 눈 폭풍이 몰아쳤던 지난 토요일, 근무시간에 식당에 도착하니 다시 집에 가라고 했다고 한다. 오늘은 출근하지 말라고 음성 메시지 남겼는데 몰랐느냐면서.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폭설로 손님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사장과 매니저와 매니저 딸이 일을 하고 있었다. 가게는 닫지 않았는데 왜 출근하지 말라는 걸까. 이렇게 저렇게 일할 시간이 줄면 나갈 돈은 일정한데 들어오는 돈이 준다. 곤란하다.
  4. R의 설명에 의하면 매니저는 감정의 기복이 심해 오후 5시에 나긋나긋하다가도 오후 7시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부리는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했다. 사장은 매니저에게 인사관리부터 매장 운영까지 전권을 위임한 상태였는데, 매니저는 이른바 비선실세였다. 매니저의 딸이랑 다툼이 있었던 웨이트리스가 뺨까지 맞고 직장을 그만둔 적도 있었다고 했다. 매니저 눈 밖에 난 직원 여럿이 이미 그만 두었다고 했다. 심성이 온화하고 겁이 많은 R은 항상 매니저만 만나면 벌써 심장이 벌렁벌렁해서 가급적 피해 다닌 다고 했다.

“Equality means dignity. And dignity demands a job and a paycheck that lasts through the week” – Martin Luther King Jr.

미국의 노동법은 고용주로 하여금 연방법과 주정부법을 동시에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연방법에 의거한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 메사추세츠주의 최저 임금은 $11 (2017년 1월 1일부터 적용). 따라서 보스턴의 고용주들은 시간당 $11 달러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이 밖에도 근무시간 변동과 보상에 대한 세부조항은 정부와 주 간에 차이가 있다. 따라서 고용주들은 피고용인들에게 그들의 업무와 더불어, 권리에 대하여 설명할 의무가 있다. (일정규모 이상의 사업장은 고용내규 핸드북을 제공한다.) R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려면 일단 그 핸드북을 함께 살펴 볼 필요가 있었다.

삶이 내게 내민 지혜 하나는, 문제 해결에 어줍잖은 지식을 뽐내기 이전에 해결에 도움이 될 전문가를 찾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도서관에는 나와 함께 파견 나온 사회복지사 M이 있다. 라즈베리 초콜릿 케잌을 기가 막히게 굽는 M은 대기업 인사과에서 오래 일하다 작년에 은퇴하고 우리 팀에 합류했다. M에게 R을 데려갔다. R은 M을 만나러 가는 길에 나를 붙잡고 신신당부한다. 매니저한테 자기가 이런 이야기를 남에게 했다는 사실이 들어가면 자기는 직장을 잃을 거라고. 그러면 큰일이라며. 직장에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말아달라고. 일단 M에게 우리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물어본 후에 어떤 조치를 취할 테니 걱정 말라고 R을 안심시켜본다.

M을 만나 R은 서툰 영어로 다시 그 간의 일들을 설명했다. 그러다 감정에 복 받쳤는지 아니면 어쩌면 억울해서 또는 불안해서인지 이내 R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M은 따뜻한 말투로, 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위에 나열한 R의 문제들은 영세 사업장에서는 관행처럼 이루어지는 일이며, 시간제 레스토랑 노동자. 조합도 없는 비정규직 개인의 권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부당함에 대한 증명과 보상을 위해 긴 시간 싸워야 할 수도 있고. 싸움 뒤에는 상처뿐인 영광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나와 M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싸우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R, 네가 틀린 것은 아니라고. 틀린 것은 그들이며 네가 권리를 찾고자 그들과 맞선다면 너와 함께 하겠노라고. 그렇게 호기롭게 R에게 이야기 했지만, 현실적인 고민에 대한 우리의 현실적인 해결책은 사실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아아, 악인과 싸우기 위해 죄 없이 성실한 사람들이 감수 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민 후 첫 직장을 구할 때는 힘들었다지만 이미 2년이나 일한 경력이 있는 R에게 이직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부당한 대우를 당하며 불안해하며 다닐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이 R에게는 와 닿지 않는 모양이다. 더 나은 직장이다 하더라도. 새 직장을 찾고, 교통수단을 알아보고, 새 사람과 일에 적응하는 일련의 불확실한 모험들이 R에게는 부당하지만 확실한 현실보다 더 두려워 보인다. 일단 ‘시험 삼아’ 라도 좋으니 한 번 보자고 R에게는 새 일자리를 알아봐주기로 하고 마음에 드는 새 직장이 구해질 때까지는 지금 직장에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기로 했다.

함께 도서관을 나서면서 힘없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R은 두 개의 납작해진 초코맛 시리얼바를 내게 내민다. 자기는 오늘 이미 네 개나 먹어서 물린다며 내 잠바 주머니에 기어코 쑤셔 넣고는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손을 흔들며 먼저 저만치 걸어간다. 그날 집에 오는 길에 먹은 초코 시리얼바는 유난히 달아서 씁쓸한 나머지 나는 연신 물을 들이켰다. 그래도 쓴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어떡해야 하나. 무력감이 내성발톱처럼 속마음을 파고들 때는.

 

모찌와 시간


지난 주에 쓰려던 글인데 생각에 발목이 잡혀 늦어졌다. 원래 모찌에 대한 글인데 시간에 대한 글이 될 것같다. 요즘 내 글은 마침표 찍을 때까지 어디로 흐를지 모른다.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다 보니 시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시간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시간의 흐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시간의 흐름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흐름에 대한 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결국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결론이 예상된다.

모찌는 곧 이웃이 될. 선아&재형 부부의 강아지이다. 간난강아지 시절부터 만나와서 모찌의 삶에 내 지분도 상당하다. 내 시간이 흐를 때 모찌의 시간도 흐른다. 모찌의 시간은 간다. 그녀의 심장박동만큼 빠르게. 개들의 평균 심장박동수는 160bpm, 강아지 시절에는 200-220bpm이다가 성견이 되면, 대형견은 140bpm, 소형견은 180bpm, 참고로 인간의 심장박동이 70-100bpm. 그러니까 강아지의 일생은 갓 태어나서는 Metalica의 The Four Horsemen에 맞춰 심장이 뛰다가 서서히 Beyonce의 Irreplaceable에 맞춰 사는 건데. 인간이 거의 평생 Don’t Worry, Be Happy 에 맞춰 사는 것에 비하면 꽤 빠른 템포라 할 수 있다. 선아 누나네 강아지 모찌는 아침이 되면 잠이 덜 깬 사람들의 발가락을 핥아 다니며 격한 아침 인사를 건넨다. 강아지의 기대수명은 인간의 1/6, 즉, 인간의 하루는 얼추 강아지의 일주일. 모찌는 시간을 어떻게 볼까.

모찌 시간 걱정할게 아니라 요새 나는 시간을 어떻게 보고 있나 생각해보니, 부쩍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간은 왜 나이가 들 수록 빨리 흐르는 듯 느껴질까. 첫 째, 시간은 절대적이지만 상대적이다. 한 해 한 해가 일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점차 감소한다. 10살 일 때는 1년이 인생의 10%, 20살이되면 5% 30이 넘어가면 3% 대로 떨어진다. 어느덧, 1년은 삶 전체로 보면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니다.  둘째, 나이가 들 수록 시간을 덜 챙겨보고 덜 기다린다. 소풍, 놀이공원, 크리스마스, 터미네이터2 개봉, 디아블로 발매. 야자는 언제 끝나나, 고3은 언제 끝나나, 후름라이드 앞 줄은 왜 이렇게 긴가. 다음 주 만화점프는 언제 나오나 드래곤볼은 언제 완결되나. 지금은 이런 기다림이 없다. 기다림이 줄면 시간은 그다지 더디게 느껴지지 않는다. 셋 째, 이정표 삼아 시간을 가늠할 만한 큰 일들이 나이가 들수록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삶이 시큰둥해지는 만큼, 시큰거리는 일들도 시끌거리는 일들도 많지 않다. 입학, 학교 앞 뽑기, 달고나, 서태지 1집, 첫 자전거, 첫 급식, 교통사고, 청소년 노래방, 변성기, 졸업, 입학, 반항, 졸업, 입학, 독립, 졸업, 입대, 결혼. 이정표의 간극이 점점 멀어진다. 내 다음 이정표는 무엇이 될까.

이 정도로는 훌쩍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억울함이 풀리지가 않아 Google신께 왜 나이가 들 수록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답을 점지하니. 논문 몇 개 던져 주신다. 대부분 인지심리 및 행동심리 관련해서 Impact Factor가 0.5를 웃도는 낮은 티어 저널들이었는데. 맛들어진 글들을 보니 왠지 저자들이 즐겁게 조사했을 것 같아서 부러웠다. 학자들이 설문을 통해 밝혀낸 결과에 의하면 사실 나이는 큰 변인이 아니고, 결정적인 요소는 *Time Pressure 라는 개념인데. 시간에 의한 압박의 강도가 클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사람들이 대답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면서 봐온 각종 시험들;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능, TOEIC, TOEFL, GRE. 한 두 시간 시험 중에 느낀 시간의 속도감은 일상의 한 두 시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지금도 시간의 압박 속에서 데드라인이 정해진 프로젝트나 보고서 마감, 납기가 있는 일들을 할 때, 하루는 또 일주일은 어디로 사라지는가 생각해보면. 그래. 나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스트레스, 스트레스, 머리 속을 맴도는 끝마치지 못한 일들의 망령들이 시간을 좀 먹고 있었다!

일년 째 차에 걸려있는 아델 씨디를 들었다. 4번 트랙, When We Were Young. 절절한 목소리에. 겨울비까지 오는데. 4분 여 시간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에 발이 걸려 자꾸만 넘어진다. 점점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천천히 젊음으로 매번 돌아가게 해주는 묘약은 기억이다. 이정표들을 따라 되돌아간 기억 속에 나는 아직도 20대 초반 언저리에 머물러있었다.

선아&재형네 집에서 코스트코에서 사온 짜장에 전날 굽고 남은 목살들을 함께 볶고, 군만두와 함께 먹고 있으니 모찌가 노려본다. 일단 한 그릇 비우고, 모찌를 안아 소파로 간다. 야들야들한 배를 맡기는 모찌. 모찌에게 정신을 쏟는 그 몇 십 분이, 집 안으로 성큼 여문 정오의 햇살과 달달하게 흐른다. 모찌는 장수할거다. 모찌가 등을 내민다. 식탐도 없고 운동도 좋아하고 어딜 가도 사랑 받으니. 이제 생후 14개월. 하지만 몸은 이미 다 컸다. 지금 모습 그대로 15년을 함께 하겠지. 겉모습은 멈춘 듯 그대로, 그래도 모찌의 시간은 숨가쁘게 흐른다. 눈 깜빡 할 사이에 그녀의 하루는 간다. 우리가 커피 한 잔 하는 사이에 모찌의 반나절이 사라진다. 우리가 하루를 보내고 잠을 자고 일어나면 그녀의 일주일이 지나있다. 모찌가 긴 하품을 한다. 모찌는, 계산이 없는 모찌는, 사랑을 주고만 가기에도 부족한 삶이라는 것을 안다. 아침에 눈 뜨면 혀를 휘날리며 내게 달려온다. 한껏 앞 발을 뻗어도 겨우 내 정강이까지지만, 밤 사이 그녀의 그리움이 한 뼘 자라 있는 것을 본다. 고맙게도, 매일매일 숨가쁘게 달리는 사랑을 본다. 그 작은 앞 발로. 멈춰 있는 내 등을 떠민다.

그래. 시간의 흐름 따위, 개나 주라지.

*Janssen, S.M.J., M. Naka, and W.J. Friedman. 2013. Why does life appear to speed up as people get older? Time & Society 22(2): 274-290.

2016

 

20 문항 – 각 5점
1. 젠더 감수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에 대하여 고민한다.  4점

늘 고민한다. 답은 아직 요원하지만. 다양한 책 많이 읽고, 가리지 않고 영화 많이 보고, 장르 구분 없이 음악 많이 듣고, 고민하고 토론하고 비판하고 수용하고. 이런거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늘 고민한다. 아직 잘 모르겠다.

2. 핸드폰 대신 책을 많이 읽는다. 2점

핸드폰 의존증에 고민이 필요. 종이 신문 손에 쥐어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뉴스는 모두 모바일 기기로 섭취중. 자기 전에는 핸드폰 거실에 두고, 책 들고 침실로 가는 연습중.

3. 수집은 시간을 억지로 물건으로 붙잡아두는 일. 멀리하자. 5점

점점 미니멀한 삶을 지향한다. 잘 하고 있다. 심지어 책도 잔뜩 모으지만 사실 미련없이 보낼 수있다. 사실 수집하고 싶은게 없는 건 아닌데. 지금 수입으로는 어림없…

 

4. 타인의 불행을 통해 위로 받지 않기.같은 맥락에서 타인의 성공을 보며 자괴감에 빠지지 않기.  3점

특히 후자, 잘 안 된다. 자괴감까지는 아닌데. 마음이 조급해지는 정도.

5. 외로움과 고독을 구분한다.  5점

고독을 즐기는 법을 아는 것 같다. 외로움은 잘 느끼지 않는다. 외롭지 않으므로.
6. 꿈 기록에 성공한다. 2.5점

꿈을 기억하는 방법은 재빨리 가까운 사람한테 다시 이야기 하는 거라고 하는데. 와이프한테 말해주는 동안 절반은 잊어버린다. 신통치 않네.

7. 새로운 요리에 도전한다. 4점

올해 새로 해 본 요리들은 대충 생태지리, 샥슈카, 코울슬로,  베이글 샌드위치들, 콘케서롤, 새우장, 무장아찌, 순대국, 비지찌개 인데. 더 있을 지도 모르지만 꽤 많이 도전했으므로 4점. 사실 예년에는 마타쿰베 (http://www.foodnetwork.com/recipes/fish-matecumbe-recipe.html), 초밥, 등갈비 탕수육 등 모험적인 것들 많이 했는데. 올해는 준수한 수준이구나.

8. 싫어하던 먹거리들을 좋아해보기. 4점

고수랑 샐러리는 완전 극복했다. 당근스틱 생으로 먹는거랑 licorice는 아직 잘 안 된다. 홍어. 그대는 너무 먼 곳에 있다.

9. 죽음을 두려워 하기. 같은 맥락으로 삶을 소중하게 여기기. 5점

탄생과 죽음이 항상 존재하는 것을 본다. 둘 다 내 삶에서도 그리 먼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삶의 종착지는 결국 죽음이라는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풍경도 많이 보고 중간 기착지에 많이 들르자. 하늘. 많이 보자. 낮에도 밤에도.

10. 주변을 재발견할 것. 4점

Isabella Stuart Gardner Museum/ A.R.T. Theater/ Lanes & Games / Hourly /  Flour Cafe/ Sugo / 누군가는 뉴욕 이외의 곳에서 식사하는 것은 인생의 끼니들을 낭비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아직 이 크지 않은 도시에는 나의 몸과 영혼을 기쁘게 살찌우는 곳이 많다. 많이 못했지만 더 잘 해보자는 의미에서 4점

11. 운동. 4점

건강하려고 하기보다는 때로는 맘 것 먹기 위해 하는 운동. 연말에 분발해서 주 3회 이상은 웨이트 이외에 농구/테니스/볼링으로 채우고 있다. 여기에 포켓볼이랑  암벽등반 정도 추가 하고 싶은데. 과연.

12. 시간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생각해보기. 4점

왜 시간이 점점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지에 대해 생각 많이 한다. 2020년 원더키디가 코 앞…

13. 타인의 지적에 기분나빠하지 않기.   3점

이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 몇 년 째 리스트에 있다. 간단한 예로 영어. 특히 상대가 너의 세상을 다 이해한다는 듯한 미소와 나긋한 목소리로 발음 교정해줄 때가 더 치욕스럽다. Arboretum 이 알보레텀이던 알보리텀이던 무슨 상관이냐 알아들었으면서. 알아들었으니까 고쳐주는거잖아! 한 번은 지도교수가 내 어벽을 찾아준다며 방금 한 말을 똑같이 한국말로 해보라고 한 적도 있다.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정말로 한국어로 했다. 한국말로 하면 자신있지. 목소리도 자신감 넘치지. 어벽이 왜 생기는데. 외국어니까. 가끔 막힌다고. 시간 끌어야 하니. 엄, 웰, 유 노우로 때워야한다… 이거 자격지심인가.

14. 적절한 조언을 한다. 4점

호응 좋았던 몇 가지: 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광고하지 않는다. 위선보다 위악이 더 피곤하다. 에고는 모름지기 내진설계가 잘 된 101층 건물의 중심추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요구항목을 적어나가는 것과 이별의 필요충분 조건을 자가진단표처럼 매일 확인 하는 커플들은 오래갈리 없다. 차선을 택하기 보다는 차악을 지양하는 것은 어떤가.

15. 주체와 객체를 바꿔 놓고 고민해본다. 4점

관계에 대한 고민이랄까. 이를테면 내가 매일 지나치던 그곳은 지하철 표를 파는 곳일까 표를 사는곳일까. 이방인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삶은 선형일까 순환일까.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등등.

16. 일찍 일어나고 일찍잔다. 1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건 당연하고 ,심지어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일이 빈번 한 걸 보니. 1점도 과분하다.

17. 부모님께 연락 자주 드리기. 1점

뷸효자는 웁니다.

18. 건강하기. 5점

건강하다. 예방접종을 제외하고 병원 방문 횟수 0.

19. 글 쓰면서 눈치보지 않기. 1점

갈 길이 멀다.

20.  불필요한 말 줄이기. 0점

줄지 않는다. 쓰고 보니 이 글도 불필요한 것 같다.

총점: 65.5/100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하게 살고 싶은데. 나한테 늘 관대해서 문제다. 세상의 문제를 진단하고 적절한 비판을 가하는 재주가. 내게는 없다.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감정적이라 아파할 줄 만 알지 성난 모습으로 불의 앞에 나설 자신이. 내게는 없었다. 새해에는 분노도 욕망도 덜 여과하며 살아야지.

 

닮았다 해서 


아버지에 대하여 쓰고 싶은 저녁이다. 

아버지는 유머감각이 남다른 사람이다. 어머니께서 동창모임에 가신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온 내가 오늘 저녁 뭐 먹을까요 하고 여쭙자 아버지는 예의 그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자동차 핸들을 열심히 움직이는 시늉을 하셨다. 그래서 저녁이 뭔데요. 부엌에 카레 있어. 

부엌에 car racer.

부엌에 카레있어.

부엌에 car racer.

아버지는 유머 만큼이나 요리도 잘 하는 사람이다. 우리 집의 메인쉐프는 늘 어머니이지만, 아버지의 내공을 우리 형제는 안다. 김장할 때면 무도, 배추도 아버지가 오와 열을 맞춰 재단한다. 어머니는 양념 배합으로 김장을 지휘한다. 간은 두 분이 합의를 본다. 아무튼 아버지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다. 힘주어 두 번 말 할 필요가 있다. 어머니가 집을 비우면 아버지는 간장과 참기름과 고추장과 설탕에 잘 불린 떡국떡 만으로 만든 떡볶이나 냉동실 구석 다진돼지고기를 찾아내 큼직한 양파 조각과 달달 볶은 유니짜장밥으로 엄마의 빈자리를 채웠다. 배를 통통 두드리며 든든하게 잘 먹은 표정을 보이는 우리들을 마주하는, 늦저녁에 귀가하신 어머니의 표정에는 엷은 서운함이 배어나곤 했다. 카레 있어. 그러고보니 자주 아버지의 개그 소재로 이용당한 카레도 늘 당근과 감자가 달큰하게 익어 맛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걸음걸이 마저 닮아 어두운 건물 지하주차장에서는 나를 아버지로 오인한 어른들의 직각인사도 받아보았다. 머리를 잔뜩 길렀던 스무살 무렵을 제외하고는 어디를 가나 아버지랑 똑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마저도 아버지의 70년대 사진을 보니 장발의 부자는 과연 닮아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버지를 보고 자란 나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나이들어갈지를 이미 너무 잘 안다는 거다. 30대의 나는 이미 60대 후반의 나까지 미리 보며 자랐다. 

나는 겉모습 뿐만 아니라 내면도 아버지를 많이 닮아있음을 깨달았다. 새로운 음식에 덤벼드는 무모한 모험심, 좋은게 좋은 물렁한 성격, 서글서글하면서 은근히 낯을 가리는 소심함, 그리고 지나친 유머감각…까지. 나는 아버지의 황소고집, 지나친 이과적 계량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살면서 동종의 비난이 종종 나에게도 쏟아지는 것을 경험하고서는 아버지의 장단점을 고루 닮은 것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내 나이 이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어떤 과거와 어떤 현재와 어떤 미래를 보았을까. 아버지가 만들어준 떡볶이 여기 저기 묻혀가며 왁자지껄하던 유년시절이 떠오른다. 바닥에 흘린 고추가루 묻은 파 조각 하나가 어머니 눈에 들어 아버지는 우리를 배불리 먹이고도 핀잔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핀잔을 들으면 멋적은 미소를 짓는 것도, 흘리며 먹는 것도 나는 아버지를 닮았다.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면 -화장을 잘 안하고 다니시는 어머니- 검버섯 좌표들과 속 썩이는 아들 덕에 늘기만 하던 눈가주름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아버지는 거울 속에 있다. 밤기차 같은 기억을 타고 서른 무렵의 아버지를 만난다. 거울 속 아버지가 미소 짓는다. 

아버지의 떡볶이. 

아빠가 보고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