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이 너무 많다.

악인이 너무 많다. 악인 소식지가 된 미디어를 매일 본다. 잠발라야에 들어간 익힌 소시지를 하나 베어 물면서 생각한다. 악인의 가장 추악한 면 중 하나는 무지의 활용인데, 다음의 화법을 돌려가며 쓴다. “그건 몰라도 돼.” “모르면 가만히 있어” “몰랐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모르게 하려 하고 모른다고 하고 모르려고 한다. 많은 악인들이 꿰찬 자리들은 무지로 죄를 모면하기에는 너무 책임이 큰 자리라서, 무지도. 악이다. 아니, 무지야말로 최악이다. 무지하다면 그 자리에 있지 말았어야지. 공감의 결여는 더 최악이다. 무감각하다면 그 자리에 있지 말았어야지. 악인이 너무 많다. 고국에도 잠발라야를 입에 털어 넣고 있는 이곳에도.

레스토랑 주방에서 샐러드를 만드는 일은 하는 R이 자신이 요새 레스토랑에서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고민을 털어 놓았다. 그녀는 내게 자신이 잘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R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재차 이야기 해준다. 악인이 너무 많다.

  1. 월요일, 수요일은 오후 9시반까지가 정해진 근무시간인데 종종 손님이 없이 한가한 날은 9시만 되어도 집에 가라고 일찍 보내는 경우. 게다가 일찍 보낸 30분에 해당하는 임금은 지급하지 않았다.
  2. 목요일 오후 10시까지가 정해진 근무시간인데 손님이 많아 바쁜 날은 11시까지 근무하게 하고는 시급의 50%에 해당하는 법정초과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경우. 사장은 R에게 일찍 집으로 보낸 날과 시간을 맞바꾼 셈 치란다.
  3. 눈 폭풍이 몰아쳤던 지난 토요일, 근무시간에 식당에 도착하니 다시 집에 가라고 했다고 한다. 오늘은 출근하지 말라고 음성 메시지 남겼는데 몰랐느냐면서.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폭설로 손님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사장과 매니저와 매니저 딸이 일을 하고 있었다. 가게는 닫지 않았는데 왜 출근하지 말라는 걸까. 이렇게 저렇게 일할 시간이 줄면 나갈 돈은 일정한데 들어오는 돈이 준다. 곤란하다.
  4. R의 설명에 의하면 매니저는 감정의 기복이 심해 오후 5시에 나긋나긋하다가도 오후 7시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부리는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했다. 사장은 매니저에게 인사관리부터 매장 운영까지 전권을 위임한 상태였는데, 매니저는 이른바 비선실세였다. 매니저의 딸이랑 다툼이 있었던 웨이트리스가 뺨까지 맞고 직장을 그만둔 적도 있었다고 했다. 매니저 눈 밖에 난 직원 여럿이 이미 그만 두었다고 했다. 심성이 온화하고 겁이 많은 R은 항상 매니저만 만나면 벌써 심장이 벌렁벌렁해서 가급적 피해 다닌 다고 했다.

“Equality means dignity. And dignity demands a job and a paycheck that lasts through the week” – Martin Luther King Jr.

미국의 노동법은 고용주로 하여금 연방법과 주정부법을 동시에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연방법에 의거한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 메사추세츠주의 최저 임금은 $11 (2017년 1월 1일부터 적용). 따라서 보스턴의 고용주들은 시간당 $11 달러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이 밖에도 근무시간 변동과 보상에 대한 세부조항은 정부와 주 간에 차이가 있다. 따라서 고용주들은 피고용인들에게 그들의 업무와 더불어, 권리에 대하여 설명할 의무가 있다. (일정규모 이상의 사업장은 고용내규 핸드북을 제공한다.) R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려면 일단 그 핸드북을 함께 살펴 볼 필요가 있었다.

삶이 내게 내민 지혜 하나는, 문제 해결에 어줍잖은 지식을 뽐내기 이전에 해결에 도움이 될 전문가를 찾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도서관에는 나와 함께 파견 나온 사회복지사 M이 있다. 라즈베리 초콜릿 케잌을 기가 막히게 굽는 M은 대기업 인사과에서 오래 일하다 작년에 은퇴하고 우리 팀에 합류했다. M에게 R을 데려갔다. R은 M을 만나러 가는 길에 나를 붙잡고 신신당부한다. 매니저한테 자기가 이런 이야기를 남에게 했다는 사실이 들어가면 자기는 직장을 잃을 거라고. 그러면 큰일이라며. 직장에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말아달라고. 일단 M에게 우리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물어본 후에 어떤 조치를 취할 테니 걱정 말라고 R을 안심시켜본다.

M을 만나 R은 서툰 영어로 다시 그 간의 일들을 설명했다. 그러다 감정에 복 받쳤는지 아니면 어쩌면 억울해서 또는 불안해서인지 이내 R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M은 따뜻한 말투로, 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위에 나열한 R의 문제들은 영세 사업장에서는 관행처럼 이루어지는 일이며, 시간제 레스토랑 노동자. 조합도 없는 비정규직 개인의 권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부당함에 대한 증명과 보상을 위해 긴 시간 싸워야 할 수도 있고. 싸움 뒤에는 상처뿐인 영광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나와 M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싸우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R, 네가 틀린 것은 아니라고. 틀린 것은 그들이며 네가 권리를 찾고자 그들과 맞선다면 너와 함께 하겠노라고. 그렇게 호기롭게 R에게 이야기 했지만, 현실적인 고민에 대한 우리의 현실적인 해결책은 사실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아아, 악인과 싸우기 위해 죄 없이 성실한 사람들이 감수 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민 후 첫 직장을 구할 때는 힘들었다지만 이미 2년이나 일한 경력이 있는 R에게 이직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부당한 대우를 당하며 불안해하며 다닐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이 R에게는 와 닿지 않는 모양이다. 더 나은 직장이다 하더라도. 새 직장을 찾고, 교통수단을 알아보고, 새 사람과 일에 적응하는 일련의 불확실한 모험들이 R에게는 부당하지만 확실한 현실보다 더 두려워 보인다. 일단 ‘시험 삼아’ 라도 좋으니 한 번 보자고 R에게는 새 일자리를 알아봐주기로 하고 마음에 드는 새 직장이 구해질 때까지는 지금 직장에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기로 했다.

함께 도서관을 나서면서 힘없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R은 두 개의 납작해진 초코맛 시리얼바를 내게 내민다. 자기는 오늘 이미 네 개나 먹어서 물린다며 내 잠바 주머니에 기어코 쑤셔 넣고는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손을 흔들며 먼저 저만치 걸어간다. 그날 집에 오는 길에 먹은 초코 시리얼바는 유난히 달아서 씁쓸한 나머지 나는 연신 물을 들이켰다. 그래도 쓴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어떡해야 하나. 무력감이 내성발톱처럼 속마음을 파고들 때는.

 

모찌와 시간


지난 주에 쓰려던 글인데 생각에 발목이 잡혀 늦어졌다. 원래 모찌에 대한 글인데 시간에 대한 글이 될 것같다. 요즘 내 글은 마침표 찍을 때까지 어디로 흐를지 모른다.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다 보니 시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시간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시간의 흐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시간의 흐름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흐름에 대한 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결국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결론이 예상된다.

모찌는 곧 이웃이 될. 선아&재형 부부의 강아지이다. 간난강아지 시절부터 만나와서 모찌의 삶에 내 지분도 상당하다. 내 시간이 흐를 때 모찌의 시간도 흐른다. 모찌의 시간은 간다. 그녀의 심장박동만큼 빠르게. 개들의 평균 심장박동수는 160bpm, 강아지 시절에는 200-220bpm이다가 성견이 되면, 대형견은 140bpm, 소형견은 180bpm, 참고로 인간의 심장박동이 70-100bpm. 그러니까 강아지의 일생은 갓 태어나서는 Metalica의 The Four Horsemen에 맞춰 심장이 뛰다가 서서히 Beyonce의 Irreplaceable에 맞춰 사는 건데. 인간이 거의 평생 Don’t Worry, Be Happy 에 맞춰 사는 것에 비하면 꽤 빠른 템포라 할 수 있다. 선아 누나네 강아지 모찌는 아침이 되면 잠이 덜 깬 사람들의 발가락을 핥아 다니며 격한 아침 인사를 건넨다. 강아지의 기대수명은 인간의 1/6, 즉, 인간의 하루는 얼추 강아지의 일주일. 모찌는 시간을 어떻게 볼까.

모찌 시간 걱정할게 아니라 요새 나는 시간을 어떻게 보고 있나 생각해보니, 부쩍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간은 왜 나이가 들 수록 빨리 흐르는 듯 느껴질까. 첫 째, 시간은 절대적이지만 상대적이다. 한 해 한 해가 일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점차 감소한다. 10살 일 때는 1년이 인생의 10%, 20살이되면 5% 30이 넘어가면 3% 대로 떨어진다. 어느덧, 1년은 삶 전체로 보면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니다.  둘째, 나이가 들 수록 시간을 덜 챙겨보고 덜 기다린다. 소풍, 놀이공원, 크리스마스, 터미네이터2 개봉, 디아블로 발매. 야자는 언제 끝나나, 고3은 언제 끝나나, 후름라이드 앞 줄은 왜 이렇게 긴가. 다음 주 만화점프는 언제 나오나 드래곤볼은 언제 완결되나. 지금은 이런 기다림이 없다. 기다림이 줄면 시간은 그다지 더디게 느껴지지 않는다. 셋 째, 이정표 삼아 시간을 가늠할 만한 큰 일들이 나이가 들수록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삶이 시큰둥해지는 만큼, 시큰거리는 일들도 시끌거리는 일들도 많지 않다. 입학, 학교 앞 뽑기, 달고나, 서태지 1집, 첫 자전거, 첫 급식, 교통사고, 청소년 노래방, 변성기, 졸업, 입학, 반항, 졸업, 입학, 독립, 졸업, 입대, 결혼. 이정표의 간극이 점점 멀어진다. 내 다음 이정표는 무엇이 될까.

이 정도로는 훌쩍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억울함이 풀리지가 않아 Google신께 왜 나이가 들 수록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답을 점지하니. 논문 몇 개 던져 주신다. 대부분 인지심리 및 행동심리 관련해서 Impact Factor가 0.5를 웃도는 낮은 티어 저널들이었는데. 맛들어진 글들을 보니 왠지 저자들이 즐겁게 조사했을 것 같아서 부러웠다. 학자들이 설문을 통해 밝혀낸 결과에 의하면 사실 나이는 큰 변인이 아니고, 결정적인 요소는 *Time Pressure 라는 개념인데. 시간에 의한 압박의 강도가 클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사람들이 대답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면서 봐온 각종 시험들;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능, TOEIC, TOEFL, GRE. 한 두 시간 시험 중에 느낀 시간의 속도감은 일상의 한 두 시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지금도 시간의 압박 속에서 데드라인이 정해진 프로젝트나 보고서 마감, 납기가 있는 일들을 할 때, 하루는 또 일주일은 어디로 사라지는가 생각해보면. 그래. 나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스트레스, 스트레스, 머리 속을 맴도는 끝마치지 못한 일들의 망령들이 시간을 좀 먹고 있었다!

일년 째 차에 걸려있는 아델 씨디를 들었다. 4번 트랙, When We Were Young. 절절한 목소리에. 겨울비까지 오는데. 4분 여 시간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에 발이 걸려 자꾸만 넘어진다. 점점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천천히 젊음으로 매번 돌아가게 해주는 묘약은 기억이다. 이정표들을 따라 되돌아간 기억 속에 나는 아직도 20대 초반 언저리에 머물러있었다.

선아&재형네 집에서 코스트코에서 사온 짜장에 전날 굽고 남은 목살들을 함께 볶고, 군만두와 함께 먹고 있으니 모찌가 노려본다. 일단 한 그릇 비우고, 모찌를 안아 소파로 간다. 야들야들한 배를 맡기는 모찌. 모찌에게 정신을 쏟는 그 몇 십 분이, 집 안으로 성큼 여문 정오의 햇살과 달달하게 흐른다. 모찌는 장수할거다. 모찌가 등을 내민다. 식탐도 없고 운동도 좋아하고 어딜 가도 사랑 받으니. 이제 생후 14개월. 하지만 몸은 이미 다 컸다. 지금 모습 그대로 15년을 함께 하겠지. 겉모습은 멈춘 듯 그대로, 그래도 모찌의 시간은 숨가쁘게 흐른다. 눈 깜빡 할 사이에 그녀의 하루는 간다. 우리가 커피 한 잔 하는 사이에 모찌의 반나절이 사라진다. 우리가 하루를 보내고 잠을 자고 일어나면 그녀의 일주일이 지나있다. 모찌가 긴 하품을 한다. 모찌는, 계산이 없는 모찌는, 사랑을 주고만 가기에도 부족한 삶이라는 것을 안다. 아침에 눈 뜨면 혀를 휘날리며 내게 달려온다. 한껏 앞 발을 뻗어도 겨우 내 정강이까지지만, 밤 사이 그녀의 그리움이 한 뼘 자라 있는 것을 본다. 고맙게도, 매일매일 숨가쁘게 달리는 사랑을 본다. 그 작은 앞 발로. 멈춰 있는 내 등을 떠민다.

그래. 시간의 흐름 따위, 개나 주라지.

*Janssen, S.M.J., M. Naka, and W.J. Friedman. 2013. Why does life appear to speed up as people get older? Time & Society 22(2): 274-290.

닮았다 해서 


아버지에 대하여 쓰고 싶은 저녁이다. 

아버지는 유머감각이 남다른 사람이다. 어머니께서 동창모임에 가신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온 내가 오늘 저녁 뭐 먹을까요 하고 여쭙자 아버지는 예의 그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자동차 핸들을 열심히 움직이는 시늉을 하셨다. 그래서 저녁이 뭔데요. 부엌에 카레 있어. 

부엌에 car racer.

부엌에 카레있어.

부엌에 car racer.

아버지는 유머 만큼이나 요리도 잘 하는 사람이다. 우리 집의 메인쉐프는 늘 어머니이지만, 아버지의 내공을 우리 형제는 안다. 김장할 때면 무도, 배추도 아버지가 오와 열을 맞춰 재단한다. 어머니는 양념 배합으로 김장을 지휘한다. 간은 두 분이 합의를 본다. 아무튼 아버지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다. 힘주어 두 번 말 할 필요가 있다. 어머니가 집을 비우면 아버지는 간장과 참기름과 고추장과 설탕에 잘 불린 떡국떡 만으로 만든 떡볶이나 냉동실 구석 다진돼지고기를 찾아내 큼직한 양파 조각과 달달 볶은 유니짜장밥으로 엄마의 빈자리를 채웠다. 배를 통통 두드리며 든든하게 잘 먹은 표정을 보이는 우리들을 마주하는, 늦저녁에 귀가하신 어머니의 표정에는 엷은 서운함이 배어나곤 했다. 카레 있어. 그러고보니 자주 아버지의 개그 소재로 이용당한 카레도 늘 당근과 감자가 달큰하게 익어 맛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걸음걸이 마저 닮아 어두운 건물 지하주차장에서는 나를 아버지로 오인한 어른들의 직각인사도 받아보았다. 머리를 잔뜩 길렀던 스무살 무렵을 제외하고는 어디를 가나 아버지랑 똑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마저도 아버지의 70년대 사진을 보니 장발의 부자는 과연 닮아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버지를 보고 자란 나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나이들어갈지를 이미 너무 잘 안다는 거다. 30대의 나는 이미 60대 후반의 나까지 미리 보며 자랐다. 

나는 겉모습 뿐만 아니라 내면도 아버지를 많이 닮아있음을 깨달았다. 새로운 음식에 덤벼드는 무모한 모험심, 좋은게 좋은 물렁한 성격, 서글서글하면서 은근히 낯을 가리는 소심함, 그리고 지나친 유머감각…까지. 나는 아버지의 황소고집, 지나친 이과적 계량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살면서 동종의 비난이 종종 나에게도 쏟아지는 것을 경험하고서는 아버지의 장단점을 고루 닮은 것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내 나이 이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어떤 과거와 어떤 현재와 어떤 미래를 보았을까. 아버지가 만들어준 떡볶이 여기 저기 묻혀가며 왁자지껄하던 유년시절이 떠오른다. 바닥에 흘린 고추가루 묻은 파 조각 하나가 어머니 눈에 들어 아버지는 우리를 배불리 먹이고도 핀잔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핀잔을 들으면 멋적은 미소를 짓는 것도, 흘리며 먹는 것도 나는 아버지를 닮았다.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면 -화장을 잘 안하고 다니시는 어머니- 검버섯 좌표들과 속 썩이는 아들 덕에 늘기만 하던 눈가주름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아버지는 거울 속에 있다. 밤기차 같은 기억을 타고 서른 무렵의 아버지를 만난다. 거울 속 아버지가 미소 짓는다. 

아버지의 떡볶이. 

아빠가 보고싶은 밤이다.

온기

교회가 불에 탔다. Veteran’s Day를 끼고 연휴였던 지난 토요일 새벽, 교회 사목실 외벽에서 시작된 불은 유리를 깨고 천장일부에 피해를 입혔다. 다행히 이웃의 신고로 불은 금새 진압되었다지만 지하로 번진 불은 보일러를 완전히 태웠다. 화마는 겉보기에는 멀쩡한 교회 곳곳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입혔다. 창문과 문을 모두 열어두었지만 교회 내부에는 탄내가 진동했다. 학생들은 오들오들 떨면서 흩어져 앉아있다가 나를 반겼다. 모국도, 여기 미국도 모두 하수상한데. 평안한 날이 없구나. 학생들이 주섬주섬 나를 빙 둘러싼다. 쨍한 하늘, 바람은 유난히 매섭다.

내가 파견되어 일하는 하이드 파크는 보스턴 근교 가난한 도시다. 이름이 말해주듯 19세기 초 영국 이민자들이 런던처럼 꾸미고자 하는 마음에 Hyde Park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도시의 출발은 풍요로웠다. 너도 나도 교회도 짓고 상점도 지어 마을을 키웠다. 하지만 보스턴 시내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돈 있는 사람들은 낡은 교외 집을 떠나기 시작했다. 낡은 집은 월세가 저렴하다. 보스턴 시내에서 차로 20여분 남짓. 이 도시의 집세는 보스턴의 절반가량이다. 150여년의 시간동안 도시는 흥망성쇠를 겪으며 도시 인구의 85%가 유색인종인 이민자들의 도시가 되었다.

부유한 공동체는 풍족하게 서로 선을 긋고, 가난한 공동체는 공간도 물자도 인력도 서로 나누고 공유한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남는다. 계속 살아간다.

오피스가 있는 도서관 만으로는 강의실이 부족해서 월, 목 오후는 길 건너 교회 부속실을 강의실로 사용한다. 처음에는 Christ Church로 지어졌으나 지금은 Iglesia de San Juan으로 불린다. 무려 1860년에 지어진 교회는 곳곳에 세월의 흔적을 피할 수 없지만 제법 관리가 잘 되어있다. 교회관리인 Fabio는 작고 단단한 체구에 늘 멋들어진 콧수염을 기르고 있다. 한번은 나에게 한국인 친구가 있었노라며 낡은 지갑 하고도 매우 안쪽 메모지 뭉치에서 한자로 쓰여진 이름과 세월에 뭉개진 번호를 보여주었다. 아무리 읽어봐도 중국사람 같은데.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어색하게 웃어 넘겼다. 눙치는 재주가 뛰어난 그는 늘 이런저런 교회 행사에 나를 초대하지만 한 번도 가지못했다. 사실 주말에는 한 번도 Hyde Park에 가본 적이 없다. 

불이 난 주말은 공교롭게도 도널드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였다. 음모론은 언제나 흥미롭지만, 내 주변 일에 음모론을 적용하는 일은 끔찍하다. 첫눈이 오려니 추위가 먼저왔다. “공식적인” 화재의 원인은 이랬다. 술취한 노인이 몸을 녹이려 교회 뒤편 이동식 화장실 안에서 불을 피운 것이 그만 불길이 커져 교회로 옮겨붙은 사고로 경찰들은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그렇다면 쇠지레로 들어올려진 뒷문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돌덩이는? 의심을 멈추기로 했다. 학생들의 동요를 막기위해 증오범죄 만큼은 연관짓지 않으려 한다. 행여 관련없다 하더라도 이제 이런 일이 생기면 반사적으로 증오범죄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되었다니. 트럼프가 그려가는 세상에서 내 이성은 자꾸 부정적인 테두리로 내몰린다. 

첫 눈이 왔던 날을 한 해가 지나 날짜 그대로 기억하기는 어렵다. 작년에는 조금 이른 10월 말쯤, 재 작년에는 올해와 비슷하게 혹은 좀 더 늦은 11월 말 쯤 이었던 듯 싶다. 그 전 첫 눈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년에는 올해의 첫 눈을 기억할까.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안아 보냈다. Thanksgiving 연휴에도 학생들 대부분은 일터로 향한다. 휴가를 떠난 누군가를 대신해 이들이 일한다. 오버타임이니까 1.5배 받아요! 신난다!라니. 행여 도시 어딘가에서 이들을 마주친다면 나는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라디오에는 트럼프 당선자의 행보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흘러 나온다. 한국의 포탈은 성난 민심으로 들끓는다. 나는 주말에 Hyde Park도 광화문에도 가지 못했다. 

무슨일이 일어난 후에야 사람들은 그 시간 그 날짜 그 순간의 공기를 기억한다. 나머지 별 일없는 시간들은 그저 흘러갈 뿐이다. 흘러간 시간들은 무의미 한걸까. 한국의 우리는 올해의 촛불들을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할까. 침묵했던 시간들은 잊혀지겠지. 광화문 촘촘하게 모여든 사람들의 온기를 기억하자.

불에 탄 교회는 다음주에 다시 문을 연다. 기억난다. 학생들이 주섬주섬 나를 빙 둘러싼다. 온기. 새 보일러보다 따뜻한 사람의 온기. 어쩌면 겨울은 온기를 느끼기위해 존재하는 계절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딘가 모를 온기가 느껴진다. 

We are all islands now.

Driving back home watching the street. The street looked surprisingly normal, even peaceful as if nothing has ever happened at all. People were busy delivering boxes of beer, cleaning the street, and fixing gas pipes. But, day by day, we will have to worry about our daily lives.

I couldn’t ask “How are you?” to anybody today. I couldn’t answer anything positive to that question. The BPS superintendent even sent out emails for the educators worrying students’ emotional status facing the current disaster.

“As educators, we should use this opportunity as a teachable moment to have conversations with our students about the democratic process…”

My manager euthanized her dog on Monday, because she had to. She looked sad. People in the US euthanized democracy yesterday. She looked worse today.

The class had perfect attendance this afternoon. Students flocked to me with questions. “What happens to my friend who has been an illegal resident here?” “Will Donald Trump deport everyone?” “Can’t I bring my wife from Haiti?” “What happens to me if my TPS (Temporary Protection Status) Visa expires?

Sorry, folks. I have no idea what he will actually do. I am stunned as much as you are.

Most of my students came to the US escaping from dictatorship, economical plummeting, murder, various other crimes, drug related problems and all kinds of uncertainties threatening their lives. To find life, to find safety, to find certainty, here they are. Trump’s election proved that this country is yet unknown. Not only to us foreigners, but to the Americans as well. I don’t know who they are, and they don’t know who they really are. It is day time but I see darkness everywhere.

However, I could not help telling my students that the life is still worth living. I could not help using this “opportunity” to motivate my students. I told my students/clients that we need to work on hoping for a better future. For now there is nothing much we can do. They should be the light by themselves in this darkness.

Hillary’s concession was touching, well-organized, and seamless. She was the most graceful loser I’ve ever seen. But, it is nothing but her concession. Will the states like Massachusetts and California be able to concede? Will Trump forgive us? Thousands of Bostonians were quivering with rage all day.

And now is the time to worry about Trump’s retribution. Remember that Nixon ordered to close Charlestown Naval Shipyard as a retribution to Commonwealth which had denounced him during his presidential campaign. Trump can do worse. He can cut federal fundings for higher education institutions, Mass Healthcare, and immigrant education. He can do anything sooner or later. I hope not, but he will do something. How hopeless it is now that hope is the only thing we can rely on.

A few days ago, I said no man is an island. But we are all islands now.

Floating – Without an anchor.

 

이미지: 사람 2명 , 웃는 사람 , 화면

Finish him.

Driving to work listening to a couple of Ben Folds tracks, I changed the channel to the Boston Public Radio. A retired woman from Boston now living in Danbury, Connecticut was talking about her impressions on the election day.

“The sky is blue and the air is so still today.”

Anchors agreed,
“Yes, it is a beautiful day.”

She continued nonchalantly,
“The last time I felt this still air, 9/11 happened. I clearly remember the air, just like today. And the situation now with Donald Trump’s candidacy is comparable to a terrorist attack.”

Touche. The anchors became speechless..

Mass. Governor Charlie Baker decided to leave the presidential ballot blank. I am neither Hillary fanatic and -of course- nor Donald’s. If I had to pick one, especially I were a governor, I would pick Hillary to finish the other, to protect the people I care for.

Well, I am very conscious of my inherent bias, perhaps even of my brutality; however this cartoon exactly represents my standpoint. (Feat. Mortal Combat)

I cannot place my students and friends in Jeopardy.

Vote, people. Vote!
Finish him.

자동 대체 텍스트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The New Yorker

A cartoon by Benjamin Schwartz. See more on our cartoon Instagram: http://nyer.cm/N76ZV5p

오늘은 섬이 아니다.


TABE(Test for Adult Basic Education) CLAS-E 시험 진행 및 채점을 위한 트레이닝을 받으러갔다. 회사는 이제야 비로소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듯하다. 불확실성은 그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못하는 듯하다. 미래에 집착하는 혼술남녀들에게도, 시험보다 과제를 선호하는 대학생들에게도, 내일 일은 모르는 내게도 그리고 네게도. 

자기소개를 했다. 짧게. 최대한 짧게. 는다 소개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자기소개를 해왔는지 기억도 안나는데 차례가 돌때면 늘 떨린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자기소개를 하게 될까. 얼마나 내 소개는 달라질까.

모처럼 출근도 안하고 학생이 된 기분을 만끽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만났다. 미래에 만나게 될 지는 모르지만, 만남이 늘 그렇듯 기약만 남긴다. 

만끽이 넘치는 하루인 마당에 끽연을 택했다. 끽해야 물담배지만. 테셐키ㄹ 에데ㄹㅁ (teşekkür ederim). 구글에서 찾은 터키어 감사인사 한마디에 주인 아주머니 얼굴에 함박웃음이 번진다. 12월 3일에는 Intercultural Awareness Training이 있다. 풍성한 겨울이 될 것 같다.

집으로 가는길에 고양이를 만났다. 잠깐 같이 사진도 찍고 쓰다듬어도 주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집에 가는 길은 다시 나 혼자였다. 뒤돌아보니 고양이도 혼자였다. 

나는 나만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은 넓디 넓어 서부나 남부로 부터 동부로 건너온 사람들은 나 만큼이나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규정하는 듯 하다. 섬처럼 부유하던 우리는 서로의 고독을 발견하고 기뻐한다. 낙엽들이 선처럼 누워 섬들을 이어준다.

고양이도, 나도, 보스턴이 낯선 서부의 멜라니도, 남부의 케이틀린도.

오늘은 그 누구도 섬이 아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집에 오는 길에 질 좋은 재료로 만든다는 빵집이 있길래 어머니 좋아하시는 우유식빵을 사왔다. 식빵을 앞에 놓고 함께 뜯으며 오늘 하루를 이야기 하고, 왓츠앱 메신저에 동영상 첨부하는 법을 알려드리고, 바오밥 열매의 효능을 알리는 티비를 함께 보았다. 어머니의 행복이 꼭 나의 행복은 아니고, 나의 행복이 꼭 어머니의 행복은 아니지만. 오늘은 필요충분적으로 행복한 저녁을 본다. 

내 미래는 나도 모르는데. 

지난 수요일 행여 자식이 미국에서 영영 살아버리진 않을까 요새 주유소 위치도 깜빡하는 70이 다되가는 아버지와 허리도 다리도 아픈 환갑의 자신을 너가 보면 얼마나 보겠니 나는 18살에 서울로 올라온 후로 제주도의 부모님과는 다시는 살지 못했다 내 마음으로는 못 보내지만 네 뜻이 정녕 미국에 남는거라면 이해하려고는 해볼게하며 잔뜩 불쌍한 표정을 짓던 어머니.  그날 마신 복분자주 때문에 요강이 아니라 속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어요 저는. 어머니.

근데 오늘 기분 좋아지셔서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1.8리터 생수 한박스를 한 손으로 들어 부엌으로 총총걸음 치시면 억울한 내 수요일의 꿀꿀한 밤은 누가 보상해주나.. 어머니가 거실에서 이케아 가구박스를 잔뜩 쌓아두고 스팟 조명 하나 의지해 낑낑 조립하는 그날 밤 악몽으로 잔뜩 우우우우울했던 내 목요일 아침은!!

건강하세요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것이부모의길 #그것이자식의길 #내게도사기꾼의피가?

It’s a sister thing.

“저는 제 여동생이 집을 떠나서 혼자 살게 되면 자살할까 겁이나요.”

지금은 이름도 존재도 없다고 했다. 소련이 붕괴하면서 타국으로 병합된 나라에서 온 자매가 있다. V와 M은 자신들의 나라가 개정판 지도에서 사라질 무렵 미국으로 건너왔다. V와 V의 아들, 그리고 M은 한 집에서 살았다. 고맙게도 V와 M은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왕복 세 시간 거리의 Medford에서 부터 Hyde Park의 강의실까지 거의 늦는 법 없이 찾아왔다. 둘은 자매인데도 참 달랐다. V는 해장국으로는 우족탕이 최고이며, 담배도 몸이 원하면 가끔 펴 줘야 정신건강에 이롭다며 호탕하게 웃곤 했고, 어딘가 어두운 듯 수줍음이 많은 M은 미안할 일이 아닌데도 늘 습관처럼 “I’m sorry”로 말문을 떼곤 했다.

어느 날 부터인가 M은 V로부터 멀리 떨어져 앉기 시작했다. 워낙 다정한 자매였기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종종 영어가 좀더 능숙한 V가 M에게 러시아어로 M의 이해가 부족한 부분을 설명해주기도 하였기에 그들의 친밀한 관계가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둘은 말조차 섞지 않았다.

휴가를 떠난 누군가의 일을 대신하기위해 M이 수업에 빠진 수요일 오후, 강의실을 빠져 나가는 V를 붙잡고 조심스럽게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V는 M이 요새 부쩍 독립하고 싶어했고 이를 말리다가 다툼이 커져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V는 그 해 대학입시를 앞둔 아들을 둔 엄마였고, M의 가족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V와 M, 둘 다 50이 가까운 나이인걸 알기에, 나는 V에게 M이야 어른이고 일도 시작해 수입도 있으니 그녀가 정 그리 원하면 그렇게 하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V는 한숨을 쉬면 내게 말했다.

“저는 제 여동생이 집을 떠나서 혼자 살게 되면 자살할까 겁이나요.”

M이 종종 쓸쓸한 표정으로 어두운 창 밖을 바라보던 모습이 생각났다. V에게 왜 M이 그럴까봐 걱정되냐고 재차 묻자. 망설임 끝에 V는 M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M의 남편은 군인이었다. 당의 신임을 얻어 수입도 좋고 진급의 기회도 탄탄한 재원이었다고 했다. M의 남편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했고, M은 그런 남편을 자랑스러워 했다. 둘 사이에는 열살바기 아들도 하나 있었다. 자신도 크면 아빠같은 군인이 되겠다고 그리고 엄마를 지켜주겠다며 아빠의 걸음걸이를 흉내내던 사랑스런 아들이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에 소련이 와해되고, 짧은 독립의 시기를 거쳐 내전이 일어났다. M의 남편은 선택을 강요 받았다. 어느 선택에도 손에는 총이 쥐어지는 자리에 있었다. M은 그때 남편을 설득하여 몰락해가는 나라를 떠나지 못한 것을 아직도 후회한다고 했다. 남편은 곧 돌아올게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내전이 끝날 즈음에는 남편의 죽음에 책임을 질, 그 어떤 명분을 가진 자도 남아있지 않았다. 남편의 죽음을 책임질 국가 마저 남아 있지 않았다.

“He died for nothing.”

분노한 V가 깨문 아랫입술 사이로 두 번 이 말이 새어 나왔다. 여기까지 듣고나니 V가 이야기를 그만 멈췄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V가 영어를 이렇게 잘 했었나. 그녀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내가 들여다본 어둠 아래에서는 더 깊은 어둠이 나를 올려다 보고 있음을 직감했다.

남편을 잃은 M은 아들 하나 바라보며 살았다. 하지만 아들에게 아빠의 죽음은 세상이 산산조각나는 것과도 같았다. M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들을 데리고 V의 가족에게 의탁하는 것뿐이었다. M은 돈을 벌기 위해 억척스럽게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휴식은 상상력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망상과 고통을 불러들일 뿐이었다. 말로는 V에게 신세지기 싫었다고 했다. 가족들 간에는 종종 고마움과 자존심이 뒤섞인 바보같은 감정들이 들 때가있다. 아들의 미래도 마음의 짐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전쟁 후 파탄난 경제체제 안에서 돈벌이 기회는 많지 않았다. 하루 종일 일감을 찾아 밖을 떠돌다 집에 돌아온 M은 V에게, 그리고 아들에게 늘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고 했다. 남편을 설득해서 도망치지 못해서 미안하고, 남편은 군인으로서 자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을지 몰라도, 남편의 죽음은 생각도 못한채 자랑스럽게 손을 흔들던 자신이 부끄럽고 원망스러워서 미칠것 같다며 V의 품에 안겨 매일 울었다고 했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부엌 옆 작은 방에서 M의 아들이 돌아눕는 소리가 났다.

M은 아들을 볼 때마다 남편 생각이 나서 우는 표정이 되곤 했다. M의 아들은 좀처럼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다만 말 수가 부쩍 줄었다. M의 아들은 V의 아들과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V의 남편과는 유독 데면데면 했다. V의 남편은 아빠를 잃은 M의 아들을 자식처럼 아껴주었지만, 그럴 수록 M의 아들은 어깨를 빼며 더 어두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사람들의 슬픔과는 별개로 시간은 매정하게 흐른다. M의 아들은 말 수가 더 없어졌지만, 학교도 다니고 집에도 꼬박꼬박 제 시간에 들어오고 괜찮아 보였다. 괜찮지 않은 사람이 괜찮아 보이고, 괜찮은 사람이 종종 괜찮지 않아 보이는 경우가 있다. M의 아들이 그랬다. 사실 줄곧 괜찮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16세가 되던 여름, 아버지의 기일을 1주일 앞두고 M의 아들은 방에서 목을 맸다고 했다. M의 아들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어떤 절망이 그 어린 영혼을 세상의 끝으로 내몰았을까. M은 그 답을 구하지 못한 채 한동안 반쯤 실성한 채로 살았다고 했다. V는 그때쯤 이민을 결심했다. 갑작스런 결심은 아니었다. 미국에는 먼저 자리잡고 살고 있는 배다른 여자형제가 있었다. V는 아들의 미래가 늘 걱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무엇보다 M의 상태가 걱정이었다. 서둘러 짐을 챙겼다. V의 남편은 남아서 돈을 벌다가 기회가 있으면 미국으로 건너가기로 했다. M은 캄캄한 어둠뿐인 창 밖만 보며 한 숨도 자지 않고 미국 땅에 도착했다.

V는 남편이 보내주는 돈으로 근근이 살림을 꾸려나갔다. 작지만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아파트도 얻었고, 아들도 공립학교에 나가기 시작했다. M도 대형 체인 레스토랑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가다가 매니저가 M을 찾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밤 낮으로 매일 일했다. M은 휴가도 여가도 모른 채 일만 했다. 큰 액수는 아니어도 쓰지 않고 벌기만 하니 제법 돈이 모였다. 몇 년이 지나자 M은 독립을 결심했다. 그리고 자신의 뜻을 V에게 밝혔다. V는 M에게 독립은 안 된다고 했지만, 왜 안 되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M은 그 이유를 알았지만 V에게 왜 안 되냐고 재차 물었다.

M은 V에게 이제 제발 그만 미안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M은 모든 것이 미안하다고 했다. M은 언제나 미안하다고 했다. 수 많은 미결(未決)의 미안함 중에서 자기가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찾았다고 말했다. 언니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 V의 화목한 가정, 성공한 남편, 대학에 합격한 아들, M은 V의 모든 것을 마음 다해 축하를 해주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상실감이 엄습했으리라. V는 M의 마음을 헤아려 조심조심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V는 재차 자신은 그래도 M을 보내줄 수 없다고 했다. 가족을 잃은 것은 V도 마찬가지다. 제부와 조카를 차례로 잃었다. V도 자신을 자책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여동생마저 잃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V의 의지는 결연했다. V는 내게 말했다.

“It’s a sister thing. We need time.”

V에게 조언을 하거나, M의 슬픔을 가늠할 혹은 동정할 자격은 내게 없다. 그저 가슴이 미어지는 이야기에 할 말을 잃었을 뿐 이었다. M의 슬픔은 그녀의 것이다. V의 고집은 정당한 것이다. 나는 M의 슬픔을 들은 대가로 M을 마주할 때마다 M의 슬픔을 짐짓 모르는 듯 연기를 해야 했다. 둘의 어색한 사이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야 했다. V와 M, 둘의 줄다리기는 팽팽했다.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서로를 강렬하게 끌어 당겼다.

M은 오늘도 인사처럼 I’m sorry로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매일 각자의 괜찮지 않은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It’s Okay. 괜찮아요. 말하며 살고 있다. 무기력한 나는 괜찮지가 않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감추고 있는 것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바라건데 M이 늘 바라만 보던 어둠 안에서 빛을 보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