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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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를 걷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먼 발치에서 백발송송 백인 할아버지가 미간에 힘을 준 채 상체를 기울여 어린아이에게 연신 무언가 말하는 것을 보았다. 나무라는 듯 보여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가까이 가보니 귀가 어두운 할아버지와 발 뒤꿈치를 깡총 들어올린 소녀가 서로 만족스러운 거리에서 만나 소통하고 있었다. 중간 중간 할아버지는 미간의 힘을 풀어 미소를 지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심리적 안전거리라고 해야 할까. 물론 나와의 관계가 우선하겠지만 때로는 사람의 거리가 문화권이나 연령대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키 만큼 넉넉히 떨어져서 대화를 시작했다. 누군가는 코가 거의 닿을 것 같은 거리까지 다가오는 경우도 있었다. 최적치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 역시 상대에 따라 다른 심리적 안전거리를 느끼고는 했다. 누군가 너무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와 말을 건다거나 하면 문득 움찔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있었다. 아이들은 스스럼 없이 앙증맞은 체구로 바로 코 앞까지 밀고 들어와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오늘 오후 세 개의 영상을 보았다. 첫 번째는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일하는 청소부로 보이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인사하고 장난도 치고 하이 파이브를 나누는 영상이었다. 두 번째는 프란시스 교황이 시리아 난민캠프를 방문해 경호원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인파 속으로 걸어들어가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는 영상이었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에 대한 ‘그것이 알고싶다’ 를 보았다. 

나 역시 어렸을 때는 거침없이 타인의 삶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필요 이상으로 사람과 사람의 거리에 대한 걱정이 생겼다. 위계질서라는 말을 배울 무렵 이미 학생주임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은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학교, 군대, 회사 – 인간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모든 곳에서 선배이거나, 연장자이거나, 고계급자들은 분필로 선을 그어 놓은 듯 다가가기 어려운 곳 뒤로 물러나 있었다. 더 높으신 분들은 심지어 그 사이 사이 여분의 사람까지 심어 사람과 사람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거리가 멀어질 수록 소통은 고통이 되고, 공감은 무감각해지는 것을 누차 보았다. 그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살아왔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서로 꽉 안은 채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아주 멀리 높으신 곳에서는 사람이 숫자나 점으로 보였나보다. 세월호 참사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 문제 정도로 풀어낼 만큼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추모하고 연결지어 기억하지 않으면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것 같아서 용기를 내어 오늘 하루를 적어본다.

주차장 옆 화단에 노란 민들레 한 송이 피어 봄이 오나보다하고 들여다 보고 있자니, 놀이터에서 아이 하나가 쪼르르 달려와 민들레 옆에 똑 닮은 민들레 한 송이를 가져다 놓았다. 그건 왜 가져다 놓는거니 하고 물으니, 한 송이는 외롭잖아요! 하고 씩씩하게 대답하고서 아이는 또 훌쩍 뛰어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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